혼자였던 오후, ‘월간 나’가 태어났다

가게 밖, 에그타르트 옆에서 시작된 상상

by Heedo Shin

#루스트하귀포구점 #자영업일기 #제주생활


[기록은 멀리 있는 우리를 잇는다]


2025년 3월 19일, 수요일.


조용한 하루 속에서도, 마음은 많은 일을 겪는다. 가게가 비어 있는 동안 찾아온 감정들, 잠깐의 외출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 그 하루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다음을 고민하게 된다.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가게는 적막했다. 며칠째 이 시간대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텅 빈 테이블을 보며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공허함은 익숙했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KakaoTalk_20250406_115658749.jpg 비워진 병들 사이, 전구 하나. 어쩌면 이게 오늘의 나.


사람이 많이 와서 활기차게 접대하고, 매출도 쭉쭉 올랐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날들은 유독 그런 바람이 간절해진다.


그러다 6시쯤 H 누나가 가게로 돌아왔다. 나는 잠시 바깥 공기를 쐬며 리프레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30분 정도 밖에 나가기로 했다. 가게 근처의 에그타르트 가게가 떠올랐다. 마감 시간은 6시 30분.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에는 환경을 바꾸고 기분을 전환하는 게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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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던 길목, 낡고 고요한 건물들이 묘하게 말을 건다.


전에 독립출판 페어에서 샀던 독일에서 지내는 8인의 성소수자들에 관한 잡지와 다이어리를 챙겨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 짧지만 확실한 쉼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나도 독일에 있으면서 한국어로 된 책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매달 한 호씩 나의 일기와 사진을 모아 잡지를 만들고, 나와 친한 사람들에게 배달하는 거다. 이름하여 월간 나. 구독료: 무료. 내용: 나의 하루하루.


내가 모은 돈으로 투자하고, 내가 직접 편집하고, 매달 새로운 네이밍을 붙여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것. 그럼 가족과 친구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떨어져 있어도 함께하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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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끝. 빛으로 물든 이 시간만은 함께였으면.


게다가 나는 생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한 편이라, 하루를 복기하고 정리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런 성향이 이 프로젝트와 딱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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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온기가 담긴 자리. 이 공간에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독일에 있더라도 월간 나를 통해 하루하루의 소식을 정리해서 한국으로 보내면 부모님과 누나들도 내가 잘 지내는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엄마, 아빠가 내가 떨어져 있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운동도 공부도 일도 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안심하셨으면 좋겠다.


기록하고, 정리하고, 만들어가는 즐거움. 그렇게 '월간 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기록은 나를 붙잡고, 멀리 있는 사람들과도 나를 이어준다.
오늘은 그걸 조금 더 실감한 하루였다.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템포로 하루를 보냈지만
그 속에서 떠오른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마음에 불을 지폈다.
언젠가 독일에서도, 이 글쓰기와 기록이 나를 지탱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매일의 기록이, 조금씩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를.


루스트하귀포구점 / 자영업일기 / 제주생활

기록하는삶 / 월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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