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나에겐 오래된 버릇이 있다. 새해가 밝아올 때마다 늘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 것. 나를 이루는 여러 면을 들여다보며 구체적인 것을 계획해야 하지만 그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올해 나를 관통할 가장 큰 중심 목표를 찾는 것이다. 늘 그랬듯 변수는 어김없이 나타나겠지만, 그 가운데 끝까지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가치 같은 것이다. 수년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적었는데 올해는 왠지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내 삶을 기록하기'. 글을 통해 내 삶의 궤적을 촘촘히 남기고 싶었다.
사실 기록의 중요성은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어제 먹은 점심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렴 1년, 2년, 3년이 지난 시간들이 기억날까. 해가 지날수록 나의 삶은 이렇게 희미해지겠구나 싶었다. 그게 아쉽고 슬펐다. 20대를 건너고 보니 그 시간이 참 치열하기도 했으며, 너무 아름답기도 했다. 지금에라도 기록을 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 나날이 그대로 증발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글쓰기 수업을 찾고, 글쓰기 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글쓰기가 늘 후순위로 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날도 여전히 글쓰기에 갈증을 느끼며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견한 <성인 글쓰기, 마음의 소리> 문화강좌 모집 공고는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 곧바로 PC자리로 달려가 신청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10명 정원에 9명 모집. 이건 나를 위한 자리였다. 그간 나를 비껴갔던 작은 행운들이 이렇게 모여 나를 이끌어주는구나 생각했다. 짜릿했다. 나처럼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9명이나 된다니. 한 자리에 모일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이 궁금했다.
내가 왜 글쓰기를 갈망하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 보니 20대의 나와 마주했다. 20대에는 '꿈‘이라는 선명한 트랙을 따라 끝없이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이 모호해졌다. 이쪽으로 가도, 저쪽으로 가도 낭떠러지일 것 같은 미칠듯한 불안함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내 미래를 고민했다. 유불리가 아닌 내 마음의 소리는 무엇인지, 침묵 속에서 고요히 불안과 싸워댔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터널을 통과하자 지난 시간이 우습게도 한 겹 미화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통에 몸부림쳤던 나를 토닥여줄 여유도 생겼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꿈이 곧 나이기도 했던 시절을 돌아보니 애틋하고 연민이 생긴다. 그렇게 소중했던 꿈을 조금은 이뤘고, 많이는 이루지 못했다. 꿈은 행복을 가져다주었고,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30대를 맞이하며 결혼과 꿈,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 사이에서 수없이 헤매었다. 방황이 길러낸 나를 기록하고 싶다. 언젠가 그 기록이, 나와 비슷한 시간을 걷는 사람에게 작은 위안이 되길 소망한다. 내가 글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