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나의 모습
마흔한 살, 계절로 치자면 한여름의 한복판 아닐까. 다가올 가을의 풍요로움을 맞이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시기말이다. 남편과 나를 쏙 빼닮은 아이들은 매일이 한여름인 듯 무럭무럭 자라난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파란 아이들을 보며 한순간 환희에 벅차올랐다가도,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양인지 가만히 더듬어본다. 한때 빛나는 꿈을 가진 나는 별의 모양을 했다가, 꼭짓점이 깎이고 깎여 동그라미의 모양을 하기도 했다. 동그라미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원하는 곳에 머물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려야 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미세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주었던 건, '글'이었다.
처음에는 나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글을 읽었다. 이제는 나에게 집중하고 몰입하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간다. 10년 전, 시댁 어머님이 달리는 차 안에서 나에게 꿈을 물은 적이 있다. 지금껏 나에게 꿈이란 그저 아나운서로 귀결됐었는데 처음으로 다른 대답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제 이름으로 낸 책을 낼 거예요. 나 자신도 몰랐던 두 번째 꿈은 그렇게 알게 되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첫 책을 내겠노라 다짐했던 나는 마흔을 3년이나 앞두고 그 꿈을 이루었다. 20대의 불안기, 30대의 방황기를 담았다. 꿈을 가진 자의 희망과 좌절은 어떤 모습인지, 나에게 결혼과 출산은 어떤 의미인지, 날 것의 감정을 정제된 글로 풀어냈다.
두 번째 책에는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도 함께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엄마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나로서의 성장을 담고 싶다. 결혼을 하고 무척이나 공포스럽게 다가온 단어가 있었다.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을 뜻한다. 결혼 전에는 경단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렸지만, 결혼 후에는 남의 일이 아닌 내 현실이 되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나에겐 너무 슬픈 말이었다. 경단녀로 분류되지 않기 위해 내가 도전한 일이 있었다.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방송을 정리하고, 말을 가르치는 스피치 공부방을 열었다. 그 작은 시작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작가예요’라고 말하기가 어쩐지 민망하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는 하루 종일 글에 몰두하며 창작의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인데, 나는 그보다 아이들과 씨름하며 골머리를 앓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밥벌이가 되는 일을 먼저 내세운다. 아이들에게 스피치를 가르친다고, 그게 내 일이라고 말한다. 신혼 시절 남편의 실직은 절망의 신호 같았지만, 나에게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신혼집의 가장 작은 방에서 시작한 스피치 공부방은 어느새 학원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꿈을 꾸길 간절히 바랐고 그 시작은 나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세모의 모양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엄마이자, 스피치 학원의 원장님이자, 글을 쓰는 작가. 세 개의 꼭짓점이 나를 이루고, 그 위에 행복이 피어난다. 한여름에 흘린 땀방울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 또 다른 꼭짓점을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시간이 흘러 여름도 지나가면 그때는 네모의 모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모보다는 네모가 조금 더 든든하려나. 지금처럼 아주 조금씩이라도 매일 꿈틀대고 싶다. 꿈틀대다 보면 계속 살아 숨 쉬는 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