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의 꿈

by 애나풀리

새벽 세시 반, 까만 정적을 깨뜨리며 알람이 날카롭게 울려댄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생기 하나 없는 민얼굴로 어젯밤 챙겨둔 짐을 가만히 바라본다. 내 몸보다 큰 옷가방과 구두 가방, 쇼핑백, 핸드백, 저 많은 짐을 가지고 오늘 난 기차와 비행기를 타야 한다. 몇 달간 소식 없던 면접 기회는 왜 한 번에 몰려오는 건지. 오전에는 광주에서, 오후에는 서울에서 각각의 면접이 있다. 서울에서 광주, 다시 광주에서 서울로 오가며 시험장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게 오늘의 미션이다. 촉박한 면접 시간에 하나의 돌발상황이라도 생기면 실패해 버릴 것만 같다. 이럴 거면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집중해 볼까. 하지만 뭐라도 되어보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스스로 기회를 지울 용기는 없다.


20대 중반까지는 시험을 위해 지방을 내려가는 것이 익숙한 일이었다. 당시 1차 서류 합격 경쟁률이 100:1 정도였으니 그저 붙여만 주면 감사했다. 시험을 보기 위해 헤어와 메이크업에 20만 원, 내 몸에 꼭 맞는 면접복을 대여하기 위해 10만 원, 왕복 교통편에 10만 원을 썼다. 그뿐인가, 1차 서류에 지원하기 위한 영상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에도 3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아나운서 면접이란 최소 70만 원의 비용을 치러야 비로소 평가받을 수 있는 셈이었다. 새벽부터 짙은 분장을 얹고 머리가 망가질세라 의자에 편히 기대지도 못한 채 낯선 땅에 도착했다. 그렇게 강릉, 대구, 울산, 진주, 창원…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시험장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5분 남짓, 그 5분을 위해 나를 항상 최고의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만 했다.


나는 한 기상캐스터 시험을 마지막으로 지방으로 시험을 보러 다니지 않았다. 이성적 판단이 들어서인지, 열정이 식은 거였는지는 모르겠다. 지방에서 홀로 사는 것이 무서워지기도 했으며, 경력 한 줄을 위해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쓰는 게 아닌지 덜컥 두렵기도 했다. 작은 자리라도 서울에서 더 다양한 방송 경험을 쌓자고 다짐했다. 나의 노력과 운은 때때로 더 유명한 아나운서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어쩌자고 다시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은 걸까. 몇 만 원이라도 아껴보자며 네 시간씩이나 걸리는 무궁화를 타고 시험을 보러 간다. 그때와 변한 게 있다면, 떨어져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처음으로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시험을 보러 갔다. 그토록 간절하지 않은데 왜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 고생은 고생대로, 돈은 돈대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는 걸까. 기차에서 내린 결론은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였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합격을 했는데 시험장에 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와 같았다. 지금껏 오래된 내 꿈은 이미 녹슬어버린 액세서리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를 빛나게 해 주었지만, 이제는 서랍 구석에 처박힌. 추억이 서려 버리기엔 아깝고, 가지고 있기엔 볼품없었다. 오랜만에 새것 그대로의 꿈을 마주한 기분을 느낀 건 기차 안에서였다. 어쩐지 신나 보이는 내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 아직도 내 꿈은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구나.


서른을 목전에 두고 여전히 꿈타령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철부지로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결혼을 했으니 꿈은 이제 지난 한 페이지로 남겨두고, 안정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결혼을 하고서 오래된 내 꿈을 다시 꺼내보았다. 쌓인 먼지를 폴폴 털어내고 다시금 읽어 내려가고 있다. 내가 얼마나 나의 꿈을 지지했는지, 얼마만큼 나를 애틋하게 여겼는지, 이제야 정말로 알 것 같다. 그때의 내 꿈은 별 같은 모양이었는데, 깎이고 깎여 어느새 동그라미의 모양 같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여기서 조금 더 다듬으면 세모가 되고, 네모도 될 수도 있다. 그때쯤엔 내가 걸어온 곳을 발판 삼아 단단히 서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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