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결혼하면 왜 그렇게 다 변하니?

by 애나풀리

아나운서 학원을 등록했다. 결혼을 하고 달라진 것은 나의 결정이 꼭 나만의 결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운명 공동체를 설립한 남편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규직 쇼호스트를 그만두고 다시 아나운서 지망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에는 긴 설명이 필요했다. 남편은 나와 전혀 다른 직군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아나운서 학원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리 만무했다. 내가 이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크고 작은 방송의 기회는 공개 채용이 아닌 아카데미의 추천 채용으로 이뤄지는 것 등 일반 회사의 취업 세계와는 많이 다른 방송사의 생리까지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다.


학원을 당장 등록해야 할 여러 가지의 이유를 늘어놓으며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이 지금의 나에게, 나아가 우리에게 최선인 가장 현실적인 이유를 강조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미래에 '아이'가 있다는 것. 남편과 나는 아이를 원했다. 적어도 둘 정도는 낳아서 남편을 닮은 아이 하나, 나를 닮은 아이 하나쯤은 꼭 가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를 갖기 전까지 내가 욕심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야 했다. 그래야만 출산을 한 후 다시 엇비슷한 데에서라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위 그럴듯한 타이틀을 가지고 싶었다. 누구나 알 만한 방송사의 간판이 필요했고, 얼마나 다양한 방송을 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 절실했다. 그것만이 미래에 아이를 낳은 나를 구원해 줄 것만 같았다.


수업료는 우리 부부의 한 달 생활비를 훌쩍 넘었다. 남편을 열심히 설득했어야 할 이유였다. 남편은 나의 이런 행보가 썩 이해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애원하는 아내를 외면할 수 없었으리라. 수업 기간은 두어 달, 그 안에 무언가라도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계획한 것이 허황된 꿈으로 치부되지 않을 수 있었다. 저녁 6시에 칼같이 퇴근을 해야 수업에 늦지 않았다. 굶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위했다. 열심과 결과가 비례할 거라 믿었다. 수업이 끝나면 밤 10시, 집으로 돌아와 다음 날 방송할 제품을 떠올리며 머릿속에선 멘트를 연습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나는 커다란 상자 하나를 들고 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선생님, 저 퇴사했어요."


퇴사를 하겠다고 말한 날, 대표님은 나를 불렀다. 처음 물은 건 꼭 퇴사를 해야겠냐는 거였다. 다음으로 물은 건 혹 생각을 바꿔줄 순 없겠냐는 거였다. 이어서 물은 건 연봉을 더 올려주면 괜찮겠냐는 거였다. 연이은 질문에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나를 믿고 선택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죄송함으로 옮겨가고 있을 때쯤 대표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왜 그렇게 다 변하니?"

결혼을 한 여성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를 한 모양이었다. 서늘해진 공기에 달리 할 말이 없어 애써 웃음 지었다. 누군가에겐 결혼을 해서 마음이 변하는 것, 누군가에겐 결혼을 해서 마지막 용기를 내는 것. 서른 즈음이 되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가며 울창해지기만 하는 나무가 될 줄 알았는데, 그저 한 낱 바람에 휘청대는 이름 모를 들풀이라니. 흔들리더라도 더 넓은 곳에 몸을 맡기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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