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지도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길치였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쪽의 두뇌는 전혀 발달하지 않았는지, 조금만 길이 복잡하고 어려워도 헤매고 다닙니다.
건물 안에서도 길을 잃어서 빙글빙글 돌아 겨우 나오기도 하죠.
지도 어플들을 이용하고도 원하는 식당이나 카페를 찾지 못해 다른 곳으로 간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길을 전혀 외우지 못해서, 직장 근처의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을 5번 넘게 갔어도 지도 어플이 없으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사람들과 밥을 먹으면 언제나 앞장서지 않고 뒤따라 걷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편인데도 이럴 때마다 스스로가 참 한심합니다.
길을 잃었던 첫 역사는 유치원 시절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놀다가, 어느덧 친구의 집 근처까지 왔던 저는 친구를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다시 돌아가는 길을 도저히 모르겠는 겁니다.
어디서부터 걸어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저는 그냥 무작정 울어버렸습니다.
다행히, 동네 할머니가 저를 보시고 집이 어디냐 물으시더니 바래다주셨죠.
그렇게 오래 걷지 않았는데도 금세 아는 길이 나와 안심했던 저는 할머니께 감사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행히,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면서 길을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헤매고 되돌아가더라도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하였으며 집으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었죠.
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제 저는 물리적으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저는 아주 크게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지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길 때문에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헤매고, 무수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새로운 길이 나타나서 그렇습니다.
그 길은 바로 '꿈'입니다.
그저, 남들이 걷는 포장된 길을 그대로 걸어가던 저는 헤맬 필요는 없었습니다.
대학-취업-결혼-육아-은퇴-노후로도 이어지는 이 길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걸어가기에 수많은 여행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선배들과 생생한 경험담, 후기 등을 통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 길은 그대로 걸어갈 수만 있다면 월급도 꼬박꼬박 잘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능력에 따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 수도 있는 길임은 분명했습니다.
그 길의 초입부에 들어선 저도 선배들이 걸어간 그 발자국대로 걸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길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행운이 있었음에도 힘들더군요.
초기에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업무에 흥미가 생겼다가도 금방 식어버리곤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일을 하려 하지 않고 업무를 회피하기만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싫었기에 주는 업무는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처리했습니다.
좀 더 잘하기 위해서 퇴근 후에도 열정을 가지고 업무 관련 공부도 하고 엑셀을 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금방 업무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고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첫 직장을 그렇게 금방 그만두고 나서 원인을 분석해 봤습니다.
그 결과, 저는 업무가 적성에 안 맞거나 제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의 일을 안 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공한 분야 안에서 좋아하는 업무를 찾기 위해 여러 기관의 인턴과 계약직을 했습니다.
2년 남짓한 이 시간 동안 저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전공한 분야에서 갈 수 있는 대부분의 기관에 대한 정보도 얻었습니다.
그 시간과 노력 덕분에, 저는 결론을 분명하게 내릴 수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공공기관 사무직은 저에게 분명히 맞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조직생활, 업무가 맞아서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다들 생계를 위해 그냥 참고 버티며 사는 거 아니냐.'
'좀만 더 버티고 적응하면 업무는 숙달될 것이고 인정도 받으면서 잘 살지 않겠나.'
'요즘 세상에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스스로 이런 잔소리까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싫은 건 싫은 거더군요.
10년 후의 미래까지 내 삶을 그려봤을 때 이 일을 계속해나가면 저는 분명 불행할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저는 사무직이 아닌 새로운 직종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3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새롭게 시작하게 된 일은 시험연구원이었습니다.
시험연구원이라는 직종은 사무직 특유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 덜했습니다.
쳇바퀴처럼 반복적이고 그저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어렵긴 했지만, 이는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좀 버텨봤습니다.
6개월 정도 버티니 슬슬 할만하더군요.
제가 가진 성실함과 특유의 집요함은 시험연구원의 업무 역량과도 연관되어 인정도 조금 받았습니다.
인복은 여전히 좋아서, 이번 직장도 사람들은 다 좋고 조직문화도 수평적이었습니다.
급여도 제가 포기한 공공기관 사무직의 정규직만큼 주거나, 조금 더 주었습니다.
민원도 훨씬 덜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 정도면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운이 정말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충분히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또다시 직장을 나와 방황이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업무가 싫어서, 그냥 홧김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런 철없음은 이미 졸업했습니다.
이 방황은 아까도 말했던 '꿈'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과 목표가 분명해지니 '꿈'이 생겨버렸는데, 이 '꿈'이란 녀석은 저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길 원하더군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사회적 시선이 아직 너의 도전을 너그럽게 봐줄 때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어?'라고 달콤하게 속삭이기까지 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꿈'이란 녀석 때문에 제 인생의 길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인생의 목적지는 '행복'이었고, 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에 있어 시험연구원의 길을 걸으면 어느 정도 보장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적성에 맞는 직장과 평균 이상의 급여는 분명 '평범한 삶'을 살게 해 줄 것이고, 소박한 저는 그 평범함을 행복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제 앞에는 또 다른 길인 '꿈'의 길이 생겨나면서 갈림길이 생겨버렸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 길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길을 앞장서서 걸어간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가시밭 투성이와 어둠뿐입니다.
그런데, 이 길에서는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했던 달콤한 향기가 납니다.
저 먼 곳의 가시에 둘러싸인 '장미'에서 나는 거 같긴 합니다.
제 마음은 이미 이 장미의 향기에 매혹되어 버렸는데,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해서 발걸음이 영 디뎌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시험연구원의 길을 걸으며 장미의 향기를 맡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장미의 향기일지, 악취가 되어버릴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이 갈림길 앞에서 저의 나침반은 작동을 아예 멈췄습니다.
길치인 제가 오직 스스로의 감으로 길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건물 안에서도 길을 잃어버리는 제가 인생이라는 거대한 건물 안에서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을까요? 그냥 놔둬도 길을 잘 잃어버리는 저에게 삶은 왜 갈림길을 제시했을까요.
이제는 어린 시절처럼 길을 잃어도, 다시 집으로 되돌아줄 따뜻한 할머니가 있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오히려 울고 있으면 따가운 시선을 보낼 무수한 타인만 존재할 뿐이죠.
저울로 계속해서 어떤 길이 더 옳은지 재보고 있지만,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이성과 감성이 계속해서 교차하면서 저울이 왔다 갔다 하고 있거든요.
조금씩 꿈 쪽에 더 무게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요.
꿈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면 저는 분명 그 어느 때보다 길을 잃고 헤맬게 분명합니다.
눈 뜨고도 길을 잃는 저는 어두컴컴한 길에서 더 많이 길을 잃겠죠.
한 걸음조차도 옮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이 어두컴컴한 길을 잘 헤쳐나갈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의문 앞에 제 용기는 사그라들었다가, 갑자기 불타오르기도 합니다.
제 이성과 감성이 서로 티키타카 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듯, 길을 잃고 또 잃으면 '찾음'이 되는 거 아닌가?"
이성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잃고 잃은 그 길의 끝이 낭떠러지면 어떡할래? 그러면 너는 그대로 추락해 버리는 거야."
그러면 제 감성은 이렇게 반박하죠.
"설령, 그럴지라도 그 추락은 추락이 아닌 낙화(落花) 일 거야."
이성은 또다시 반박합니다.
"꽃도 펴보고 져야 낙화인거지, 꽃조차 피우지 못하는 무수한 봉오리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끝없는 다툼의 승자와 패자는 결국 제가 정하게 될 겁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만큼은 감성의 편을 들어주고 싶네요.
"뻔한 길을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지겹고 재미없겠지만, 꿈의 길은 한 걸음걸음마다 가슴 뛰고 재밌지 않을까?"
아직도 철없이 현실을 부정한 채 꿈을 좇는 저의 마음.
청년은 다시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꿈을 좇고 싶어 합니다.
현실은 차갑고 냉정하지만 소년의 꿈은 뜨겁기에 잘 견뎌낼 거라 믿기에.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보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꿈의 길도 헤매고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믿습니다.
꿈을 향해 떠났던 많은 선배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겠죠.
길치는 목적지를 한 번에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다 남들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헤맴속에서 남들이 찾지 못했던 인생의 귀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냄으로써 다른 여행자들을 도와주기도 하죠.
저 또한 누군가의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훌륭한 길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