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이 지금이라면, 죄책감 없이 즐기시기를.
아무리 덧없고 힘든 인생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인생에는 저마다 소중한 시간과 장소가 존재합니다.
그 시간과 장소는 추억이 되어, 우리가 고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누군가에겐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 반대로 누군가에겐 느긋하게 살았던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 되어주는 것이죠.
저에게도 몇 가지 소중했던 시간들과 장소들이 있습니다.
그 시간들과 장소를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부산대학교 장전역 밑의 산책로입니다.
편입을 하고 나서 코로나가 터진 뒤, 저는 혼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로움이 점점 깊어져서 술을 먹으면서 달래기도 했지만, 제 외로움을 가장 많이 달래준 것은 바로 산책로입니다.
여기서 참 많이 뛰고, 걸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고 고독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제 청춘의 일부가 담긴 장소라서 참 애틋한 곳이네요.
대학을 졸업하고 근 3년간 가지 않다가, 설날에 고향으로 내려간 김에 한 번 가봤는데 여전했습니다.
페인트로 깔끔하게 칠해놓긴 했지만, 구조나 장소는 변하지 않았더군요.
변한 것은 역시, 저 자신이었습니다.
대학 시절의 저와 사회에서 3년 정도 있었던 저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생활비보다 두 배는 더 벌고 돈도 더 거리낌 없이 쓰지만, 즐거움은 어쩐지 대학생 때가 더 컸던 거 같네요.
편입하고 나서의 저 자신은 여전히 저 산책로 밑에 일부 남아 있는 듯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간 찌들어버린 저였지만, 저의 일부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잠깐이나마 대학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네요.
두 번째 장소는 제 고향 근처 내수면 생태공원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쯤에 공원이 완공되어 생긴 곳인데, 이곳이 산책로가 참 잘 되어 있습니다.
원형으로 둘러 쌓인 이곳에서, 저는 고독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기에(물론 지금도 그렇긴 합니다.), 이곳에서 고독을 즐기는 게 참 좋았습니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꼭 들르는 이곳은 사계절마다 풍경과 분위기가 바뀌어 보는 재미가 넘쳐납니다.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보이는 풍경이 전혀 달라지기도 하죠.
똑같은 장소인데, 왼쪽으로 5분 정도만 걸어도 이렇게 풍경이 바뀝니다.
뻥 뚫린 하늘과 맑은 강물, 그리고 초록하게 펼쳐진 숲들을 보면서 저는 참 많은 힐링을 얻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아래와 같이 또 바뀌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또 이렇게 울창하게 나뭇잎들이 피어나서, 제 마음도 덩달아 풍성해지곤 했습니다.
계절마다 들러서 새로운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던 곳이네요.
다른 지역의 무수한 공원을 가게 되더라도, 제 마음의 안식처는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장소들이 있겠지만, 제게 가장 소중한 장소는 저 두 곳이네요.
시간으로 치면, 저는 2022년 9월 ~ 2023년 4월까지의 시간입니다.
예전에 <공공기관 취업 실패기>에서 말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첫 사회생활의 쓴 맛을 느끼고, 백수로 두 달 동안 방황하다가 가까스로 기간제근로자로 일했던 시기.
일하고 나서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진로를 다시 찾고 재취업을 하려 했던 그 시기.
많은 방황을 했고,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 더 저에게 맞는 방향으로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2023년 6월 ~ 2024년 4월까지의 시간이네요.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을 하면서 좋은 상사들과 동기들을 만나 재밌게 회사생활을 했던 시기.
하지만 여전히 방황하면서 진로를 잡지 못했던 시기.
실업급여를 또 받으면서 재취업을 준비하다가, 비로소 내 진로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하게 생각이 정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때에도 글쓰기를 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다시 뒤엎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저도 한적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험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야근도 잦고, 주말에도 간혹 출근하여 살아가는 게 조금 힘들긴 합니다.
너무 일에만 파묻혀 살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나 다른 활동들을 못해서 힘든 거 같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저에게 소중했던 시간과 장소들이 저를 지탱해 주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삶이 너무 피폐하다고 느껴질 때, 여러분에게 소중했던 시간과 장소들을 다시 찾아가 보시면 어떨까요? 효과가 없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시절의 마음가짐을 다시 떠올리게 되면서 확실히 힘이 나더군요. 그런데, 장소야 그렇다 쳐도 시간은 이미 흘러가버렸는데 어떻게 찾아가냐고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 시절의 장소를 찾아가면, 시간은 저절로 나를 다시 찾아와 줍니다.
타임머신이 없는 현재로선, 이 방법만이 과거를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네요.
그렇게 잠시 과거를 여행하고 나면, 미래를 다시 걸어갈 힘이 분명 생길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의 미래를 위해 소중한 시간과 장소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