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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꿈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교양 교수님을 추억하며..

by Nos

저는 20대 중반에 편입을 했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하지 않아서 죄책감과 후회로 가득했었기에, 어떻게든 이 감정을 떨쳐내고자 편입을 했습니다.


편입은 대학 교과과정 2학년을 마치고 나면 응시자격이 주어지며, 3학년으로 입학하기에 재수처럼 1년을 손해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부가 부족하여 대학 3학년까지 다니고 편입을 준비하게 되며 1년의 유예기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표로 했던 대학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어서 저는 어느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는 2019년의 2월.

토익 성적을 필요한 만큼 받아 놓는 데 성공하고 3학년 1학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3학년 1학기 동안은 전공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확실한 여유가 생겨났습니다. 당장 시험을 쳐도 괜찮을 정도로 말이죠.


편입은 보통 1 ~ 2월에 시험을 치고, 2월 중순에 발표가 난 뒤 바로 수강신청을 하여 3월에 입학을 합니다. 8월 여름방학에 이미 어느 정도 공부를 끝마쳤던 저는 2학기를 나름 여유 있게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전공과목도 다 들었었기에, 교양 과목만 수강하여 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려 했지요.

그때, 영화 연극의 이해라는 3학점짜리 교양을 듣게 되었습니다.


인기가 많은 과목이었기에, 제때에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해서 남은 수강신청 기간 동안 열심히 클릭하여 가까스로 듣게 된 수업. 저는 이 수업에서 저도 생각지 못했던 제 꿈을 예측하고 응원해 주신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업의 구조는 간단했습니다.

교수님이 매주 영화를 한 편 소개해주고, 영화를 일부 보고 나서 그에 대한 내용을 서로 얘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조를 짜서 토론을 하기도 했었죠.


워낙 많은 수강생이 듣는 수업이었어서 저는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건대, 수업 중에 지루한 부분이 있으면 몰래 편입 공부를 하기도 했었던, 수강 태도가 나쁜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떠들거나, 출석체크만 하고 중간에 나가버릴 정도의 학생은 아니었지만요.


재밌는 영화가 나오면 집중하면서 보다가, 재미없으면 몰래 공부를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교수님이 과제 하나를 내주셨습니다.

<순응자>라는 옛날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리포트 형식으로 써오는 과제였습니다.

어느 대학 교양과목에서나 흔히 할 법한, 영화 감상문 숙제였는데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떤 생각을 적고 감상문을 쓰는 리포트는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열심히 과제를 했습니다.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몇 개 있어서, 나름대로 분석을 하고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지금 제가 <영화 리뷰> 매거진에서 하는 것처럼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포스팅하는 것보다 좀 더 퀄리티 있게 글을 썼었네요.

과제를 사이트에 제출하고 나서, 1주 정도 지났을 즈음에 교수님이 코멘트를 달아주셨습니다.

그때의 코멘트를 제가 캡처해서 저장해두지 않은 게 참 아쉽지만, 내용은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본인만의 분석적인 해석이 참 뛰어나고 재밌습니다. 언젠가 될지 모르겠지만, 학생은 글쓰기를 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네요.'


그 당시에는 책도 읽지 않고, 글쓰기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어서 교수님의 칭찬이 얼떨떨했습니다.

그냥, 이번 교양 과목 학점도 A+을 받겠구나 하면서 기분만 약간 좋아했습니다.

그 외에도 비슷한 과제를 여러 개 내주셨는데, 그때마다 좋은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20대의 첫 시작부터 편입을 준비했고, 저의 게으름으로 편입을 1년 정도 더 준비하면서 저는 항상 이방인이자 외톨이였습니다. 누군가와 진정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학교생활을 하던 중에, 이 수업은 제게 일종의 휴식처였습니다. 모두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씨와 배려 덕분이었겠죠.

연구자, 학자가 아니라 교육자, 스승으로써 좋은 역할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렇게, 3학년 2학기가 끝이 나고 저는 편입 시험에 무사히 합격했습니다.

새로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교수님의 말씀을 거의 잊었습니다. 책도 안 읽고 공부만 하면서 살아가던 저는 이대로 그냥 직장인이 되어 평범한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았죠. 그러나, 저는 어느 순간 교수님의 말대로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작가의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저의 어떤 면을 보고 글을 쓰며 살아갈 거라고 예측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저의 과제물을 보고 말씀해 주신 그 한 줄평이 때때로 저에게 크나큰 용기와 위로를 준다는 점입니다. 교수님에게 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교양 과목 수강생 중 한 명이었겠지만, 교수님의 말 한마디는 그 누구도 저에게 해주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교수님.

저는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았고, 언제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멘토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저는 계속해서 정진해 나가야겠습니다.

그 당시의 외롭고 음울한 청춘이었던 제게 따뜻한 말을 해주셔서, 그 따뜻함이 지금도 저를 위로해주고 있음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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