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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버티는 가장의 모습을 보며..

아이를 위해 오늘 하루도 필사적으로 견뎌내는 직장인들.

by Nos

2024년 12월의 마지막 날.

오늘도 어김없이 7호선을 타고 회사로 출근 중이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출발지인 석남역에서 타는지라, 앉아서 가산디지털역까지 편하게 출근합니다.

2024년의 마지막이지만, 직장인에게는 그저 똑같은 평일.

평소같이 조용한 지하철이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옆에서 음악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더군요.

옆자리에는 40대 초반처럼 보이는 남자 한 분이 피곤한지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이어폰도 없이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소리의 근원지가 손 쪽에 있는 핸드폰이 아닌 거 같아서 다시 슬쩍 보니 귀에 있는 이어폰에서 들리던 소리더군요.

이어폰인데도 저한테 그 정도로 소리 들리는 거면.. 고막이 손상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노래는 딱 제가 초등학교~중학교 때 듣던 옛날 걸그룹 댄스곡들이었습니다.


10분 넘게 노래를 듣고 있자니, 피곤했던 저는 슬금슬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옆쪽으로 고개 살짝 돌리면서 눈치 줄려는 순간, 갑자기 남자분의 핸드폰 화면이 켜지더군요.

그 화면 속에는.. 아직 1살도 안 된듯한 아이 사진이 화면에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옆자리의 남자분은 더 이상 소음을 내는 아저씨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버티는 한 가장으로 바뀌더군요. 정말 출근하기 싫은데, 아이를 위해 출근을 해야 하니 신나는 노래를 그렇게 크게 틀어서라도 버티려고 하는 모습.


저도 예전에 정말 다니기 싫었던 회사를 억지로 출근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누군가를 책임지고 있지 않았던 저는 1달 만에 바로 손쉽게 그만뒀습니다.

궁핍해져도 저 혼자만의 생계만 궁핍해지기에 조금 참으면 됐으니까요.


하지만, 옆자리 분은 자신이 돈을 벌지 않으면 당장 아이에게 써야 될 생필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본인은 그냥 굶어도 상관없겠지만, 아이가 굶는 것을 참을 수 있는 부모는 없죠.

그래서 억지로라도 회사를 출근해야 하는데, 출근은 너무 하기 싫어서 출근길에 음악을 들으며 힘을 내려는 필사적인 모습에 제가 어떻게 짜증을 낼 수 있을까요.


그분은 2024년의 모든 하루가 어쩌면 모두 그런 하루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약간 아득해집니다.

저는 한 달도 버티기 힘들었는데, 1년은 감히 상상도 가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버틴 1년 덕분에 아이의 2024년은 무럭무럭 예쁘게 자랄 수 있었겠죠.


2025년 새해가 밝은 1월 1일의 오늘은 그분이 집에서 푹 쉬시면서 마음을 재충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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