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아들이 바치는 짤막한 글.
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하면 학창 시절은 봄, 청춘은 여름, 중년은 가을, 노년은 겨울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계절은 인생에서 전부 소중한 계절이지만, 그럼에도 여름만큼 중요한 계절은 없습니다.
어떤 꿈도 꿀 수 있고, 인생의 여러 갈림길이 나뉘는 청춘.
그 계절에, 오직 나를 위해 뜨거운 여름을 보내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저의 어머니입니다.
곧 서른을 맞이하는 못난 아들이, 환갑을 맞이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바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머니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으실 겁니다.
특히, 저처럼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라면 더욱더 말이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업주부를 하셨던 저의 어머니가, 이혼 후에 할 수 있었던 일이 몇 개나 있었을까요?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할 수 있는 일들은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더욱 일을 해야 했고, 집에 와서도 온전히 가사노동을 했어야 했습니다.
TV속 다른 집 자녀들은 어린 나이에도 혼자 집안일을 하며 공부도 척척했지만, 저는 그런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공부 대신에 게임이랑 만화책, 소설을 좋아하는 철부지 아들이었거든요.
그런 저를 한 번도 타박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는 그땐 몰랐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의 따뜻함은 느낄 수 있지만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네요.
어째서.. 그렇게 저를 마냥 기다려주실 수 있으셨을까요.
아무리 자녀의 미래가 부모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한 들,
넉넉하지 못한 저희 형편에는 제가 곧 당신의 미래였을텐데..
추석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뵀던 어머니의 모습 속에는 이제 가을의 계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랜 노동의 대가로, 어머니는 남들보다 더 일찍 늙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서히 겨울이 다가오는 것처럼, 어머니의 머리엔 눈처럼 흰머리들이 곳곳을 덮고 있었더군요.
한여름처럼 쨍쨍했던 제 마음속에는 일순간 서리가 내리는 듯했습니다.
무더운 날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시리더군요.
여름날 소나기처럼 갑자기 눈물이 날 뻔한 걸 애써 감추기도 했습니다.
야속한 세월은 어째서, 자녀가 여름을 살아갈 때 부모는 겨울을 맞이하게 하는 걸까요?
넉넉하지 못한 형편은 어째서.. 나의 쨍쨍한 여름은 어머니의 혹독한 여름 덕분이었음을 느끼게 하는 겁니까..
어머니.
어머니의 여름은 오로지 저의 봄을 위한 계절이었어요.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도, 잠시 들렀다 쉬어가는 그늘의 시원함도 없었던 어머니.
뜨거운 햇빛만 받았던 여름이란 계절이 얼마나 혹독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저는 꽃을 보며 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어요.
이제는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나의 어머니.
내 햇빛을 다 바쳐 어머니를 다시 여름으로 되돌리고 싶건만, 야속하게도 그런 일은 불가능하네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실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일 뿐.
겨울은 고독하고 춥지만, 마냥 그렇게 나쁜 계절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벽난로로 데워진 집 속에서,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영화를 보신다면 말이죠.
뜨거운 땡볕 속에서 쉴 새 없으셨던 어머니.
겨울만큼은 따뜻한 벽난로 속에서 남들처럼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저는 어머니처럼 혹독한 여름을 보내려고 합니다.
어머니의 겨울은, 저의 봄처럼 따뜻하고 풍요로웠으면 좋겠거든요.
어머니, 나의 따뜻한 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가 따뜻한 겨울을 만들어 드릴 차례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