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문학 고전이라도 재미없으면 안 읽으렵니다.
예전에 <나의 돈키호테>라는 책을 읽고 <돈키호테> 소설 자체에 대한 흥미가 생겼습니다.
학창 시절에 흔히 배우거나 듣기를,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 이 한 문장으로만 이해했고
실제로는 어떤 내용인지 잘 몰랐으니까요.
세상에서 꼭 읽어야 할 고전, 전 세계 문학사를 대표하는 고전, 노벨 연구소가 선정한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중심적인 작품 1위 등 수많은 영광의 타이틀을 차지한 <돈키호테>.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나름 독서가(?)의 자존심을 걸고 <돈키호테>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재밌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돈키호테의 그 우스꽝스러움과, 정신이 나간 듯한 대사.
화려한 미사여구가 곁들여졌지만, 유려한 듯한 문장과 대사들.
읽으면서 웃기기도 하고 재밌긴 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솔직히 너무 지루했습니다.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분량이 길고, 아무래도 돈키호테의 '모험기'이다 보니 이야기 전개가 단순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사고 치고 돈키호테는 헛소리하고, 시종인 산초는 고생하고.
사건과 배경은 시시각각 달라지지만, 전형적인 레퍼토리는 같다 보니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돈키호테가 쓰였던 시대적 상황에서는, 그 소설은 정말 재밌었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좀 밋밋하다고 해야 할까요?
분명 문학적 깊이는 <돈키호테>가 더 뛰어나겠지만, 순수 재미로만 치면 웹소설이 더 재밌다는 게 저의 솔직한 평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는 정말 교양 없는 무식한 사람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의 귀중한 문학적 유산인 <돈키호테>를, 흔하디 흔하며 상업적이기까지 한 웹소설과 비교를 하다니요.
그렇지만, 제 입장에선 재미가 없는 걸 어떡하나요.
웹소설도 몇 개 읽어 본 제 입장에서는, 이야기의 순수 재미는 웹소설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돈키호테> 말고도,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도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재밌게 읽었었기 때문에, 다른 유명한 소설 <뉴욕 3부작>도 읽어보려 못 읽겠더군요. 어렵고, 정신이 어지러워서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재미없고 머리가 아팠습니다.
결국, 저는 남들이 칭찬하는 뛰어난 소설들을 그대로 덮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교양이나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었나? 하면서 말이죠.
만약에, 제가 단순히 지식을 뽐내려는 허영심 깊은 사람이었다면 억지로라도 책을 다 읽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실용적이고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이라 그런지 아무리 문학적 고전이라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못 읽겠더군요. 재미있는 책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데 말이죠.
다른 문학 고전인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라는 책은,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인생의 의미'라는 테마를 주제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면도날>을 읽을 때는 억지로 읽는 게 아니라, 제가 읽고 싶어서 저절로 손이 갔습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읽기 싫은데도 억지로 그냥 제가 똑똑하고 유식해지고 싶어서, 저의 지적 허영심을 위해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어쩌면 가장 무식한 행위가 아닌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의 지적 허영심, 잘난 척을 위해 내게 맞지 않는 행위를 억지로 하는 행위.
귀중한 여가 시간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억지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책을 읽는 행위야 말로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니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그냥 조용히 <돈키호테>를 덮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하고, 다른 모든 이들이 명작이라고 칭송한다 한들 제게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요?
문학도 영화, 드라마, 만화 등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재밌어도, 나한텐 재미없을 수 있고 내 취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칭찬받고,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고전이라 하더라도 나에겐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재미없는 드라마, 영화면 바로 시청을 종료하고 다른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안 맞는 옷은 억지로 안 입는 것처럼, 책도 그냥 나에게 안 맞을 수 있습니다.
나의 개성, 취향에 따라 옷 입는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책이야말로 옷보다 훨씬 더 가지각색이고 다양하기에 취향을 더 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옷 하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옷들을 탐색해 보는 것처럼 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옷 하나를 사면 만족스럽게 입는 것처럼, 책도 나에게 맞는 책이어야만 즐겁게 끝까지 읽는 것이죠.
재미없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억지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것만큼 고역이 따로 없으실 겁니다.
책은 솔직히 더욱 그렇습니다.
영화는 알아서 흘러가기라도 하지, 책은 내 속도에 맞춰서 흘러가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이 장황한 얘기들은 다음의 말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저에게 재밌는 책만 읽고 싶습니다. 문학 고전들보다 웹소설이나 일반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교양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조금 억울합니다. 저는 그냥 인생이 더 즐겁고 재밌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읽을 뿐입니다. 똑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처럼 책을 소비할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