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01_스마트폰 과잉의지

인간의 피조물

by 희진

‘사용자 최적화’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와 문명 발전에 꼭 필요한 전략이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도 잘 꿰뚫고 있는 UX라는 학문은 노력과 결과의 전통적인 상관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 속에 있다.


스크린의 자판을 아는 대로 눌러 맞추기만 하면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터치 몇 번이면 원하는 앱을 다운로드할 수도 있고, 소비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스와이프 한 번이면 콘텐츠를 끊임없이 공급받으며 무한한 쾌락의 세상에서 부유하게 된다.


인류는 늘 본인의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효율에 미친 종족이라는 것이다. 엉성한 농기구의 탄생을 시작으로, 인류는 모든 불편함을 해소하겠다는 원대한 비전 아래 결국 손가락 관절 움직임 몇 번만으로도 욕구를 통제하고 충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마치 인간의 피조물 안에선 모두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된 것 같다. 모두 나의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며,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그리 큰 자원이 요구되지 않는다. 모든 게 사용자 친화적 구조의 산물인데- 즉각적으로 얻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분노를 감당할 합당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노력이라는 요인을 통해 결과라는 산물이 나오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나, 투입값과 출력값이 무조건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용자 친화적 개념의 혁신은 비례를 넘어 역비례라는 구조를 통해 젊은 인간들의 근본적인 사고와 행동의 메커니즘을 바꿔 놓은 것이었다. 또는 짜인 시나리오를 따르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버튼 클릭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니 그 이상의 노력을 들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알고리즘과 공유되는 모든 정보를 믿으며 살아가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네모난 피조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만 같다.


무형의 갤러리 속 데이터는 쌓여만 가는데 책장은 빼곡하지 않다. 내 메시지의 역사를 공책에 옮긴다면 족히 50권은 나올 것이지만, 내 기록 노트의 네 페이지는 그것으로 사명을 다했으리라. 내 색연필은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나는 오직 스크린 위에 띄워진 데이터에서만 의미를 찾고 추억을 남기고 있다. 자칭 전문가들과 인플루언서는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내게 활력과 동기를 부여하는 지인은 그리 많지 않다. 넘어야 할 것이 산더미라 이것이 연명인지 살아가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현실과 달리, 가상의 세상은 오직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나를 빈번히 묶어 놓는다.


언젠가 가진 것이라곤 이 한 몸이 전부가 될 때, 나는 신분을 증명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내 몸에 담은 것보다, 그 피조물에 담은 내가 더 나다웠기 때문이다.


유형의 세상엔 오로지 무형에 나를 전송하는 주체만이 있을 뿐이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껍데기,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