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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우호우 Nov 21. 2021

휴학을 고민하는 여러분께

지금 아니면 하지 못한다

 글은 2018 페이스북 피드에 작성한 글입니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며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고 대학생분들의 활동 역시 전과 같이 활발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난 글이지만 이대로 서랍에 썩혀 두기 아깝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예전에  글을 공유합니다.



2018.07.

휴학하고 참 이상한 삶을 살고 있다.
한 학기만 하려던 휴학 생활은 어느새 1년이 되었고, 7월까지 제주도에 살려고 했던 계획은 5월에 칼같이 끝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카카오에서 12월까지 계약을 해서 일 하고 있다.


대학교 졸업 전에 몇 가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었고, 복학한 학기 생활이 그다지 녹록지 않아서 회의감에 젖어 휴학을 했다. 기왕 휴학한 김에 입밖에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 제주도 생활을 즐기러 숨 게스트하우스에 연락을 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제주도로 내려가고 나서 효리네민박이 대박 터졌다


부모님은 휴학을 반대하셨다. 부모님 세대 때 휴학을 한다는 것은 시대 부적응자 또는 학비가 부족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멀쩡하게 학교 다니다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휴학한 걸로 보였나 보다. 실제로 내가 제주도로 떠나는 날, 집을 나서기 전에 어머니께서 나를 잠시 붙잡고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비행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 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눈물을 보이시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겠다는데 왜 이런 반응을 보이실까"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소통의 부족이 주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난 그동안 쭉 담아왔던 바람을 실천하러 가는 것인데 부모님은 이걸 알 턱이 없으니 당연히 마찰이 빚어진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푸념 아닌 한탄을 듣고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 비행기표를 현장 구매해서 제주도로 가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텝 생활이 시작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와 빚어진 마찰은 제주도 생활 중에 해결되었다. 제주도 생활을 한 달 반 정도 했을 때, 반복되는 파티 일상에 매너리즘을 느꼈고 이렇게 계속 사는 건 행복하고 좋지만 나중에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고 뭐라도 좀 해야겠다는 심정에 쉬는 날에 제주도 여행 대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인근 가구점에서 일당 8만 원을 받으며 가구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고(이때 제주도 전역을 트럭으로 다니며 가구 배달을 하게 돼서 제주도 지리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근력이 늘은 건 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기업에서 인턴을 한번 해 보려고 여러 기업 인턴 자리를 알아보고 자소서를 처음 써 보게 되었다.
자소서를 쓰고 같이 일하던 스텝 형, 누나들에게 첨삭을 받고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지원한 곳이 지금 일 하고 있는 카카오였고 군대에서 배운 엑셀 능력과 스토리를 잘 풀어써서 운 좋게 서류전형에 합격해서 오프라인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 전전날에 집에 오래간만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카카오 서류 합격 소식을 알리자 나를 좀 다르게 보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결과로 말해야 되나 보다). 그리고 오랜만에 어머니와 전화를 하다가 둘이서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솔직한 감정을 다 털어놓았고 그제야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집에 들르고 오랜만에 가족을 보고 다음 날 오프라인 면접을 보고 그다음 날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일주일 후에 카카오에서 일을 하게 돼서 부산-> 제주도-> 판교라는 동선을 타게 됐다.

카카오에서 일을 하며 느낀 건 일단 여기서 일하니 견문이 훨씬 넓어진 것 같다. 큰 메리트이자 큰 기회다. 현역 it 종사자분들이 어떤 프로세스로 일을 하시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떤 과정들을 밟아야 하는지 옆에서 실시간으로 보게 된다. 내가 품었던 환상이 몇 번 깨지긴 했지만 울산이라는 좁은 환경에서만 있던 정저지와였던 내가 드넓은 야생에서 일하게 된 건 큰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카카오 판교오피스 내부



지금 생활에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크게 매치가 되지 않는다. 현재 기획파트에서 엑셀로 db구축 업무를 하고 있는데 내가 앞으로 하려는 ux디자이너의 테크트리와 크게 매치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옆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상담을 받는 형식으로 부족한 견문을 채우는 식으로 일 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파트장님께서 나의 사정을 잘 알아주셔 몇 가지 ux 과제를 주는 식으로 나를 배려해 주신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수도권의 또 다른 큰 메리트 중 하나로 정보와 사람이 엄청 많다는 점이 있다. 어쩌다 하이퍼커넥트라는 회사의 현역 ux디자이너분이 강연하시는 곳에 가서 강연을 듣다가 그 분과 연락처를 교환하게 됐는데, 몇 주 후에 그분에게서 다른 스타트업에 인턴을 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었다. 프런트엔드 쪽과 ux/ui에 관심 있고 실제로 html/css와 자바스크립트 웹 코딩 쪽 경험이 있는 나라서 그쪽에 인턴 제의를 했던 것인데 카카오와 8월까지 일단 계약이 되어있어서 거절했었지만...... 나중에 그 자리가 정직원 TO였다는 말을 듣고 속이 쓰라려 오는 건 참기가 힘들었다. 이 때문에 12월 21일에 계약이 만료되는 마당에 맘속 한 구석에 스타트업에서 일을 한번 해 보는 게 미련처럼 남게 되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과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건 정말 다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 스타트업에서 모든 것을 자기 주도로 해 보는 경험을 가져보고 싶기에 미련 아닌 미련으로 남게 되었다.


이쪽에서는 새로 사람을 뽑아서 인수인계시키는 것보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을 계속 쓰는 걸 원하니 재계약을 바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내심 내가 계절학기를 포기하는 걸 원할지도 모른다(?). 지금 하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계절학기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추가 계약을 맺고 전공에 관련된 업무를 하나 하고 싶다. ux디자이너의 일에 맞게 서비스 기획부터 시작해서 유저 리서치까지의 과정을 실현하는... 사용성 공학 수업에서 배웠던 그런 프로세스 말이다. 지금은 혼자 개인적으로 하고 있긴 한데 기왕이면 여러 사람들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런 기회가 오면 참 좋을 것 같다. 오지 않으면 내가 알아서 만들어야겠지. 외주를 뛰든 뭐를 하든 간에.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봤을 때 휴학을 해서 내 맘대로 결정하고 살지 않았다면 이 기회가 과연 왔을까 싶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니들 맘대로 살아보는 걸 강추하는 바이다. 그중에서 휴학은 더더욱 추천한다. 모두 포탈로 가서 학적을 휴학으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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