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UX UI 디자이너의 고군분투 이직 스토리
최근에 이직에 성공했다.
서울로 상경한 지 약 4개월, 벌써 한 번의 이직을 했다.
남들은 16년 일하면서 평균 4번 정도의 이직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4년 주기가 아닌 4개월 만에 이직을 했다.
2020년 7월, 강남구의 모 벤처 스타트업에 UX UI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다.
면접 때 사수 없이 혼자 일할 것이다는 말을 들었지만 대학생 때 창업팀을 포함한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면접관님께서 ‘저희가 원하는 모든 능력을 갖추셨다’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별 일 있겠냐는 생각을 품에 안고 취업을 했다.
그땐 몰랐다. 그게 안일한 오판이었다는 것을.
신입이 인프라 없는 1인 TO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디자인 작업을 하고 나서 작업한 작업물이 잘 디자인되었는지, 기획에서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수정하면 발전할 부분이 어딘지, 디자인 시안에 누락된 항목은 없는지 등을 제삼자의 눈으로 체크해주는 시스템의 부재가 나를 괴롭혔다. 통상적인 UX UI 디자인 팀에서는 팀원 서로서로가 피드백을 해주지만(혹은 사수가 짚어주지만), 이 회사의 디자이너에겐 힘든 일이었다. 나의 사수이자 동료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다수 현역 선배님들과 구글신이었고 그들로부터 매사 도움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개발자 구성이 90%가 넘는 회사에서 그나마 나와 가깝게 일을 하던 분이 계셨지만, 그분이 주시는 피드백은 ‘이뻐요’, ‘안 이뻐요’ 뿐이었던 것이다.
가장 처음에 몸담았던 프로젝트 1차 시안 발표 전날, 밤을 꼴딱 새우면서 나름의 PT 준비를 해서 성황리에 발표를 마쳤지만 돌아오는 피드백은 ‘좋아요. 이쁘네요’였다.
이때부터였을까, 속히 말하는 ‘현타 스택’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사 초기에 불같이 타올랐던 열정은 조금씩 좀먹어 갔다.
애초에 UX UI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내가 유일한 조직에서 만족할 만한 피드백을 기대했던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구비된 조직이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물론 신입 짬에 혼자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을 수 있지만 그게 과연 옳은 방향인지 그릇된 방향인지 진단해 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조금이라도 도태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내 입장에서는 내가 처한 상황은 혼자 발버둥 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쉬운 환경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현타 스택이 쌓여가던 도중, 비핸스에 업로드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쿠팡 본사에서 면접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의 나에게 쿠팡 면접은 반드시 잡아야 할 동앗줄이었고 밤을 새우면서까지 입사 과제, 인터뷰 준비에 사활을 걸었다. 최종 면접까지 도달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주니어 포지션을 뽑긴 하지만 당신은 너무 주니어다’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내가 아직 한참 멀었다는 부끄러움, 탈락한 것에 대한 서러움, 지금 포지션에 만족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차례로 느꼈으며 지금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렇게 버서커 모드에 돌입했다.
매일 퇴근 후 잠자기 전까지 포트폴리오 스터디 준비, 주말엔 포트폴리오 스터디 참여 및 동종업계 사람들과 교류를 이어나가며 나에게 부족한 능력을 채워나가며 강점을 최대한대로 증폭시키려 노력했다. 이때부터 하루 수면시간을 4시간으로 제한하고 부족한 잠은 커피로 틀어막으며 고3 때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살았던 것 같다.
인크루트, 원티드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공고들에 지원했고 서합-면접-탈락 프로세스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단, 개인적으로 연락 오는 1인 디자이너 스타트업, 소규모 회사에서 오는 제안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 가기 위해 이 고생을 하는 건데 비슷한 환경으로 이직해서 현타의 무한루프에 빠지긴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겁의 이직 준비 기간을 지내다 슬슬 지쳐갈 즈음 리멤버 커리어를 통해 한 헤드헌터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UX Researcher 포지션 제안이었으며 나쁘지 않은 인원수를 가진, 사옥이 있는 회사였다. 업무내용과 회사 비전을 보니 이곳이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으며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인터뷰 제안에 응했다. 조금 있다가 그 회사의 UX팀장님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좋은 결과를 얻어 대면 면접, 과제 전형, 2차 대면 면접 프로세스, 총 4단계를 거쳐서 최종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헤라클레스가 12번의 시련을 견딘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연봉도 상승했다. 처음엔 꿈인지 생시인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5분간 아무 생각도 못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에게 사실을 알렸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시고 한껏 기쁜 목소리로 ‘사실 네가 집에 부담 안 주고 빨리 취직해서 나가기 위해 그곳에 간 것도 없지 않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회사 다니며 이직 준비하는 너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잘 풀려서 너무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직 확정 다음 날, 대표님과 퇴사 면담을 했다. 내가 속에 담아두고 있는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고 대표님께선 묵묵히 들어주셨다. 얼추 이야기가 다 끝나고 대표님께서 '충분히 그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갈 곳은 있다고 하시니 퇴사 날짜를 정해야겠지요. 언제 나가길 희망하세요?'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이미 퇴사가 확정되었고 맘도 거의 떠난 사람이 오래 있어봤자 양쪽에 좋을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인수인계할 내용도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당일 퇴사를 조심스레 언급했고 대표님께선 웃으시며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티타임을 하며 한 번 더 적당한 선에서 썰을 풀었고 그분들 또한 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주며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고 공감해주셨다.
정들었던 16인치 맥북을 초기화하며 나머지 사람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업무적으로는 만족하기 힘들었지만 팀 멤버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헤어지는 그 순간이 퍽 아쉬웠다. 서로 잘 되라며 덕담을 나누고 양 손 가득 짐을 싸들고 회사 정문을 나섰다.
새로운 회사에서 나는 디자인 스프린트 기획 및 운영, 그리고 UX Research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하게 된다. 특히 디자인 스프린트는 미국 지사에 있는 미국인 직원들과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점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직 확정 이후 자기 전 매일 영어 드라마 영어 자막을 띄워놓고 영어회화 표현을 깨알같이 익히고 있다. 새로 이직할 회사는 내가 도약하기에 좋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 더 이상 혼자 일하지 않으며 전문 UX 팀에 소속되었고 업무적으로나 회사생활적으로나 배울 점이 많은 베테랑 상사분들도 존재한다. 다음 주에 입사하는데 설렌 마음에 잠을 설치고 있다.
나는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의 김계란님이 언급하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못 한 게 아니라, 포기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라는 글귀를 참 좋아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직 준비라는 미궁 속에 빠져 있던 시절, 그냥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릴까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을 꾸짖으며 각성하는 데 도움이 된 말이다. 지금도 많은 스타트업, 벤처기업에서는 혼자 일하는 신입 UX UI 디자이너분들이 많다. 절벽에서 떨어져 살아남은 사자 새끼처럼 강한 생존능력을 지닌 분들도 계시겠지만 많은 분들이 내가 겪은 불안함을 겪고 계신다. 이직을 결심한 시점에서 조금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갔으면 한다. 결국엔 버티는 놈이 승리하며 끝까지 자기 자신을 믿는 놈이 승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