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신들의 언어

무당은 아닙니다. 다만,

by 모은수


신들의 언어는 다양하다.

외국어를 조합하기도 하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 우주 어라고 하면서, 끼링까랑~ 인간들아~ 하는 아주머니가 한동안 방송가를 뜨겁게 달궜는데

그때는 웃겼고, 지금은 그것이 언어인 것을 알고 있으니 가끔은 그녀가 조롱의 대상이 될 때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근데 왜 우주의 신은 그녀에게 모국어를 패치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를 그대로 전달했을까?

차라리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진짜 신의 언어일 수도 있었을 텐데,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신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말로 이야기를 전한다.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선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왔다는 '히로미'라는 대신과 한라산에 간 일이 생각난다.

그녀는 누군가를 따라와 한국으로 왔는데, '가장 반짝이는 사람을 따라왔다'라고 했다.

'그래야만 별이 있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다줄 것 같다'는 말도 함께.

우리는 히로미를 한라산 초입에 두었고,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종을 울리기로'했다.

종을 치면 히로미가 나타나 일을 돕기로 했던 것인데

재미있게도 그녀를 놓아준 사찰에는 커다란 타종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절에나 종이 있을 수 있지만

아주 커다란 종이 버젓이 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우연은 언제나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전지적 독자시점>이라는 영화에 도깨비와 성좌들이 한국어 패치를 하고 자신들의 언어를 전달하는

장면에서 나는 어느 신 하나가 영감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했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신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사람을 통해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왜일까? 신들 사이에도 할당제라는 게 있나? 아니면 성과제도를 통해 승진을 하기도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얼마 후 나는 그 진실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신들도 승진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처럼 신들도 일을 하고, 점수를 받고, 부서를 이동하거나 관리직을 맡기도 한다.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은 FM 같은 성격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 일처리를 하시는 분이었어서 1년 만에 급속

승진을 하셨는데, 그녀는 처음엔 글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이야기를 천상에 올리는 일만 하다

나중에는 달(월광)의 앞에서 천사들을 관리하고, 나중에는 저승사자들의 일을 맡기도 하셨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하고 부서를 이동한다.

사람하고 똑같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하루도 왠지 고단하게 느껴진다.





아빠는 천문을 쓰시는 분이다.

하늘의 글이라고 해서, 한자도, 부적의 문양도 아닌 글이 있는데 나는 아무리 쳐다봐도 무슨 글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무지가 아무렇지 않았는데, 점차 공포로 다가왔다.

아빠의 글 안에 신도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면 나는 분명히 저 글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까막눈으로 천문을 읽지 못한채로 10년, 20년 후에 아빠의 부재가 생기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어떻게든 글을 외우려고 붙잡고 쳐다보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아빠, 쉽게 생각해보면! 세종대왕도 사람들한테 글을 쉽게 알려주려고 한글을 만들고 배포했잖아.

이 글도 그렇게 가르치면 어때? "


"신의 글을 어떻게 모두에게 가르쳐. 그리고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읽게돼"


아빠는 그렇게 내 말을 가볍게 통과 시켰고, 나의 불안은 점차 증폭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글을 읽을 수 없었다. 그때 그때 신에서 알려주는 것을 해석할 뿐이었다.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 뭐든 미리 알지 못하면 공포에 휩싸여 버리는 나란 인간의 성향상 시간이 지날수록

예민도만 높아질 뿐이었다.


어느날 불안이 폭발한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아빠의 부재가 생기면 나는 어떡하느냐며 난리를 친 적이 있었는데, 아빠는 내게 자신이 써내려간 글을 주며 눈을 가렸다.


"신의 글은 마음으로 보는거야. 가르친다고 되는게 아니야"


그리고나서 글을 보았을때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그 긴 글을 읽어 내려갔다.

모든 글을 읽고 나서 불안이 녹아내리며 눈물이 터졌는데, 안도감이었는지 뭐였는지 그날의 감정은 해석

불가다.


아마도 글 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해석하려들고 잘잘못을 따지고 계획한 것을 이루려는 나의 집착에 대해

고쳐주려는 신들의 계획이었던것인지, 그들은 내가 글을 알지 못해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시켜 주었고, 그것이 가능해졌을때 용기라는 것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아빠가 없는 빈자리가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것이라는 기대였다.





나는 신들의 언어를 빌려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거부감을 갖거나, 욕을 먹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과 고민으로 글쓰기를 망설이던 날도 있었다.

어느덧 글의 회차가 마지막으로 향한다.

브런치에서 지정한 30회차의 이야기안에서 나는 <무당은 아닙니다만>에 대한 천기누설을 독자님들과

함께 소통했다. 응원을 받고, 그 힘으로 글을 좀 더 써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는다.

이또한 신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 아닐까 감사를 전한다.


모든 인연은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법이니.

그 사이의 생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조금 더 나다워 지시기를.


<30년전, 아버지의 첫번째 글>




에필로그 , 독자님들께!


오늘로써 무당을 연재한지 한달하고도 5일이 지났습니다.

매일 연재라는 부담보단 늘 설렜던것 같아요.

정성스러운 댓글과 생각나눔은 제 하루에 큰 활력이었습니다. 브런치연재덕에 올해 다하지못한

이야기들을 더묶어 출간준비를 하게되었습니다.


제글을 사랑해주시고, 믿어주시고, 함께하고자

하는 좋은 인연을 만났어요.

부족하지만 날것그대로의 초안을 함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다양한 에피소드를 엮어 책으로 찾아올게요.


남은 <방과후 백씬> 의 연재는 계속됩니다!


멀지않은 때에 무당은 아닙니다만2 의 연재로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해주시고, 기다려주실거죠?


포기하지마시고 써내려가세요.

우리의 언어가 누군가의 심장에 닿을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