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전쟁 49

<무당은 아닙니다만> 무당이 아닌 이유

by 모은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내게 무당이 나오는 영화나 이야기를 보고 후기를 묻고는 한다.

<파묘>를 같이 보러 간 친구는 영화보다 내 표정을 더 궁금해했고, 주변의 작가, 감독들도 어떻게 봤냐? 고 묻고는 했다. 곡성과 파묘를 보며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영화보다 더 무서웠다는 동료들은 후기를 듣고 나서야 함께 미소를 짓고는 했다.


이번엔 예능이다.

서바이벌과 오디션에 미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번에는 하다 하다 무당들을 서바이벌에 참여시킨다.

방송국 놈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출간을 준비하며 원고수정과 다른 작업들에 치이고 있지만 <무당 2>의 연재를 주 1회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전쟁 49라는 디즈니플러스의 예능이 여론이 반으로 갈리는 분위기다.

우선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거절하지 못하고 이 판에 뛰어든 사람들이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첫 번째였다.


예능 출연이란 1년~3년까지도 신당의 예약마감 확정일테고.

유명세까지 더해지면 몸값 또한 연예인처럼 뛰게 된다.

역술인, 타로, 신점 할 것 없이 그들도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이 판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무당 1에서 말했던 '무당은 초능력자가 아닙니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운명전쟁 49에서는 그들의

초능력을 시험하듯 고인의 사인을 맞추라고 하거나, 서로의 운명을 읽으라고 하거나...

무례를 넘어서 예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행태가 회차마다 나왔다.

특히, 애동들은 만신을 보며 동경의 눈빛을 보내고 '만신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기도 하며

연 5억을 번다는 스승의 몸값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타인의 아픔을 나누고 기도해야 할 보살들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방울과 부채를 흔들며, 제발 답을 알려달라는 모습은 안쓰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신과 대화를 하기 위한 도력을 쌓은 레벨이 되면, 방울을 흔들지 않아도, 부채를 펴지 않아도, 엽전을 던지거나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아도 그들과 연결이 된다.

딸랑이는 소리가 제발 답을 알려달라는 무당들의 울부짖음처럼 들린 것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남편이 물었다.


"만신이 뭐야? 만 가지의 신을 만나는 거야? 그게 꿈인 것처럼 이야기하던데, 예능에서는"


"음... 만신은 그냥 무당 대장이야."


"아~ 그럼 제일 잘 보는 건가?"


"그냥 도력에 따라 다른 건데... 한번 설명을 해줄게"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설명을 덧붙여 볼까 한다.






무당은 귀신을 보고 영적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 있고, 애동(어린아이), 선녀, 장군 같은 분들이 계신다.

무당보다 높은 것이 만신이고, 만신 다음이 대신이다.

대신은 귀신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신령급이 되는 분들인데 아직 신급이 되지는 못한 상태.


무당이 이장이라면 만신은 시의원 대신은 시장 정도라고 말하면 예시가 좀 쉬우려나?


대신은 신과 만나볼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해 볼 수 있는 위치다.

그다음은 신령.

신령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공부로는 100년은 해야 하고 만신들도 꽤 오랜 시간 기도를 해야만

신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령 다음은 뭘까? 바로 천신이다.

천신 위에 하늘이 있고 하늘의 대등한 위치에 해와 달 그리고 땅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지신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당은 아주 낮은 급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의 일은 사람이 가장 잘 알듯이 귀신의 일은 귀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무당만큼 귀신과 잘 연결된 사람은 없기 때문에 당장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거나, 과거를 맞춰주길 바란다면 무당을 찾아가는 게 맞다.


<무당은 아닙니다만>을 연재할 때 '무당이 아니면 뭐냐?' 물었던 질문에 '천사'라고 답한 적이 있다.

하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 '천사' 였던 이 일화 안에는 나와 함께 계신 분께서 '천신' 이기 때문인 이야기도 담겨있다. 도력이 높아서 천신이 있는 거냐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무당만큼 기도를 하지도 않고, 기도터를 다니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윗선에서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천신은 기도터를 다닐 필요가 없다. 하늘에 기도를 올리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장소로 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별과 달 해와 하늘에 인사를 하는 것이지 귀신이 드글거리는 기도터에 갈 이유가 없다는 것.





무당의 꿈이 만신이라면

만신의 꿈은 대신이다.

대신의 꿈은 신령이고

신령은 천신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천신들도 자신의 일이 다 다르고 들어주는 역할도 다르다.


무당 2 연재를 준비하며 이다음에 해야 할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아직 자기 정리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장의 내일을 미리 알고 싶어 한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무당을 참 많이 찾아다녔다. 타로를 보고, 오늘의 운세를 보고, 다음엔 내가 어떻게 되는지 묻고 또 물었던 것 같다.


나를 찾아와 '나는 언제 잘됩니까?' 묻는 손님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준다.


"당신의 미래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때 당신은 잘 될 겁니다"


이곳은 간판도, 깃발도 없다.

예약도 받지 않는다.

도움을 받은 누군가가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누군가를 보내고 싶다고 하면 신께 여쭙고 통과가 될 때만

사람을 받는다. 왜 오느냐? 물었을 때 그냥 사주 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하면, 가까운 점집을 추천한다.

이곳은 점을 보는 곳이 아니에요.

무당이 아니거든요.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도, 막상 와서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3년 이상 함께 시간을

보낸 분들은 멘토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해주신다.

그리고 더 이상 자기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고, 신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요령을 피우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라는 자기 공부를 통해 점집에서 발길을 끊게 된다.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 손님이 끊기는 격이니 좋지 않은 일일수 있지만

신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잘 돼서 더 이상 이곳을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저 가장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하루 무사히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

그것이 신이 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무당집을 찾아가 '한번 맞춰봐'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당이나 타로, 역술인 모두 그들의 무언가를 맞추기 위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귀신이나 신이 나 사람이나 첫 대면에 모든 걸 알기란 어렵다.

그저 하나의 상담가와 내담자로서 만나게 되면 얘기를 털어놓기도 좋고, 설루션을 주기도 좋다.


굿을 몇 천만 원에서 몇 억씩 주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신에서 정한 금액은 그리 높은 금액이 아니다.


사실 하늘에서는 신의 일을 하는 모든 이가 자기의 직업이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업이 없으면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의 주머니를 털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지금의 나처럼 '작가'의 직업을 갖게 하거나, 신을 모셔도 연예인을 하거나, 아버지처럼 공무원이거나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에게서 신을 받아 모시는 제자들은 보험회사 직원, 피부관리사, 미용사,

영상업, 등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다.


무당만 하게 되면, 굿을 따야 하고, 부적을 써줘야 한다.

마치 돈을 얼마나 버는 것이 그가 용한가, 용하지 않은가를 판가름하는 것처럼 잘못 비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무당도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기도 말고, 다양한 신의 경험과 공부를 해야 하고, 타로와 사주, 관상과 풍수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인생을 알아야 하고, 인간을 알아야만 한다.

병을 알아야 하고, 아파봐야만 한다. 사랑을 해야 하고 이별을 해야만 한다.

그런 것들이 모아져야만 사람을 보고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위험한 것이 '안다'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대신, 알 것 같다. 알게 되었다.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종교를 알기 전에 인생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를 10대에 알아 무엇하고, 예수님의 고통과 하나님의 사랑을 미리 알아 무엇하겠는가.

나의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난 후에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운명전쟁 49의 후기는 도파민이 필요하다면 볼 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삶의 전쟁을 치렀는가 궁금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맞추기 이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가 정리되었는가도 생각해야 만한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는 타인을 판단하고 맞추는 것이 아닌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조금 더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당을 찾아가려는 분들은 스무고개 하듯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지 마시고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내 안의 불안이 무엇인지, 욕심을

버리고 나면 그 안에 들어있는 나의 순정은 무엇인지. 보통은 그 속에 해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나누고 싶다면 우리를 찾아와도 좋겠다.

당신의 불안을 함께 나눌 사람들 이기에.


모두의 행복을 바라며 <무당은 아닙니다만 2>의 연재를 시작해 볼까 한다.





천기누설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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