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언제부터인가 안전상의 이유로 학교체육대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에 학부모와 조부모님 친척들까지 대동되어 시끌벅적하게 진행되던 일들은 이제 아카이브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들이 너무 바쁘시기도 하고, 편부모의 이유 등을 놓고 봤을때 단체로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꼭 나쁘지 만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얼마전 뉴스에서 학교운동장에서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것을 금지시킨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학교 수업시간이나, 방과후 시간에 체육이라는 것을 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통제를 벗어나 아이들끼리
노는 것이 성장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기에 아이들 끼리 부딪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웠다. 학교에서는 '사고의 위험을 줄인다'는 안전의 의미겠지만
안전과 성장의 충돌에 어느편을 드는것이 맞는지 나조차도 어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놀이시간을 금지 시키면 놀이에서 언제나 배제되는 외톨이 학생들에게는 좋은 일일까?
놀이에 끼든, 끼지 못하던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위험한 걸 하지말라'는 어른들의 말대로 놀이가 사라졌다해도 아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향해 가는 존재'다.
위험은 곧 성장이라 그 에너지를 놀이로 풀지 못하면 결국 다른 쪽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아이들이 게임을 너무 많이해요' 라는 고민에 빠져있을때 '아이들 교육을 하는 멘토강사'로 부터 '아이들이 게임할때가 그나마 행복한 시기'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몰라서, 게임마저 시시해지면 더 큰 자극을 향해 떠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무조건 못하게 하기 보단 시간과 규칙을 지켜 충분히 게임을 하도록 생각을 바꿨다.
아이들은 완벽한 환경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조금은 위험하고, 불편한 틈에서 비로소 자신의 힘을 발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세상을 남겨두는 일일 아닐까.
넘어지지 않게 만드는 어른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지켜보는 어른.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안전’이 아니라 ‘조금의 용기’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엄마! 예전에 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서 팔 부러진 거 생각나요? 그때 진짜 아팠었는데...
이제, 괜찮아요!"
이전의 사고를 기억하고 아이는 스스로 조심한다.
어떤 기억은 넘어져 본 사람만이 아는 것 이겠지.
혈기왕성한 녀석들의 에너지를 뽑아내야겠다.
오늘 밤, 두발 쭉 뻗고 푹 잘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