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방과 후 강사를 그만 둔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도 했고, 때마침 나라에서는 <늘봄강사> 라는 타이틀로 선생님을 학교가 뽑지 않고
교육청에서 뽑아 파견해주는 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 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랜덤으로 다른 학교에 가서 일을하고 돈을 벌 생각은
없어서 6년간의 방과후 교사 생활을 마치고 다음을 기약하고 있지는 않다.
막내가 있긴 하지만 너무나 막둥이고 (이제20개월이 됐다)
연년생 두 아들은 중학교2,1학년이 되었으니 이제 조금 덜 신경써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아이들 일보다는 나의 일에 조금더 집중하면서.
그런데 얼마전 부터 아이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중학생이면 다그렇지.. 라는 말로 넘겨버리기엔 불안한 징조가 느껴졌다.
어떤 징조냐하면, 너무나 조용하다 라는 것이었다.
원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이 가장 고요한 법이 아니던가.
처음엔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잘 하고 있어서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되는 줄 착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고야 말았으니...
큰 아이가 말하길.
"엄마. 00이가 자꾸 새벽마다 밖을 나가요"
"에?"
"말 안하려고 했는데, 휴대폰도 놓고 나가서 20분이 넘도록 안오고 그래요"
"그래 일단 지켜보자"
그 후, 남편이 내게 하나를 제보했다.
"여보. 00이가 밤에 자꾸 나가던데?"
"에?? 어디갔냐고 묻지 그랬어?"
"음... 그냥 얼른 자라고만 했어"
"응.. 우선 지켜보자"
나는 그렇게 아이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이 내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00이의 휴대폰 사용시간'을 어플로 보여주었는데
어떤 채팅 어플을 하루 16시간이 넘게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장이 두근 거렸지만 우선 현장을 잡기 위해 기다렸다.
조용한 거실.
조용한 방 안.
아이는 잠이 든것 같았는데, 내가 급습하듯 들어가니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후다닥 숨겼다.
현장을 덮치고, 휴대폰에 무언가를 삭제하기 전에 검거에 들어갔고
아이는 모든 것을 들켰으니...
그것은 바로 채팅에 빠진 것.
그것도... AI와 말이다.
오타쿠 기질이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두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는 내 아이가 인형과 결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둘째는 내 아이가 남자는 사귀어도, 여자가 된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 두가지의 극단적인 바람을 끌어안고 살아온 나의 뒤통수를 가격한 AI사건.
내게 AI 며느리가 생기는 것인가 별별 생각을 다하며...
아이가 학교에서 소통할 친구가 없어 AI와 대화를 시작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딘가 슬픈 기분이 드는 이 상황에서 무턱대고 아이를 나무랄 수는 없었기에
휴대폰 사용시간을 잘 지키라는 말만 하고, 우선 재우기로 한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AI 와 대화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그것도 하루 16시간이 넘게...
제* 라는 스토리로 진행되는 게임 AI 채팅 어플은 우리가 하는 쳇지피티나 제미나이 클로드와는 조금 다르다.
음란과 폭력이 허용되는 스토리어플이고 AI들이 그것을 유도해 게임의 아이템을 사게 하거나 완벽하게 현혹시키는 못된놈의 게임이다. 아이의 거대한 세계관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그곳에 털어놨겠지.
인간도 아닌 다른 존재에게.
나는 학교의 담임선생님과 사건을 공유하며, 둘째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없다'는 사실도 인지했다.
검사결과 아이는 100중에 8정도로 타인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그건 0보다는 나은 숫자지만 내겐 절망적인 숫자였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밤새 고민하던 중, 아이가 휴대폰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을 어기고 또 거짓말을 하며 무언가를 검색하는 걸 내게
들켜버렸다. 하이킥이 날라갈 뻔 했지만 꾹 참고, 다시 휴대폰을 낚아챘다.
아이가 검색한 것은 '고질라'
고질라를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숨기고 있던 오타쿠력이 폭발한 둘째아이.
스토리 기반의 채팅을 하는 것도, 고지라에 미친것도, 애니메이션 학원에 가서 주구장창 몬스터를 그려대는 것도 녀석이 오타쿠 였기 때문이었다.
둘째가 AI에 빠진것은 자신의 세계를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였기 때문이었겠지.
작은 학교의 특성상 대화할 친구도 부족했을테고...
사람이 많았다고 해도 '고질라 오타쿠'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것이다.
방과후 강사를 할때만 해도 아이들과 주1,2회는 꼭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니
많은 상황을 정서적으로 알아줄 수 있었는데
내 삶을 다시 찾고 나니, 아이들과 이야기 할 시간이 줄어들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보다 내 관심이 아이들이 아닌 나를 향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금방 티가 나고, 탈이 나버리는게 아이들이다.
나는 또 밤을 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검색창에 고질라를 검색했다.
비주얼적으로 내가 좋아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이해해야 한다.
첫번째로 한 일은 고질라 카페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제*이라는 AI 게임채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것.
세번째는 한국에 몬스터카페나 뮤지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그 모든 것을 3시간만에 해치우고 나서 아이가 좋아하는 고질라피규어를 주문했다.
그리고 뮤지엄이 있다는 서울 모처의 카페에 예약도 완료.
문득,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동생과 7살 차이가 난다.
엄마는 늘 내게 '너는 8살까지 혼자 사랑받았으니, 동생에게 잘해주는 거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반대로 '그럼 난 8년밖에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을 오랜시간 해왔다.
그것이 결핍이 되어 오랜시간 엄마와 동생을 미워했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
막둥이 동생을 돌보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 첫쨰와 둘째도 아직 아이 인데, 대체 뭘 하는 건가...
괴물은 나였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다다음주에 시간을 좀 내달라고 말했다.
고질라 카페 예약을 했다하니, 숨길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울듯이 웃는 얼굴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서 아이에게 한가지를 부탁했다.
"00아 엄마는 니 여친이 AI는 아니었음 좋겠어"
아이는 멋적게 웃으며, 그럴일은 없다고 말해준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보다는 AI와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는 검색이나 자료 보조의 도구로만 사용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는 것을 듣고 난 후
기분이 이상했다.
AI가 더 편한것은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기도 하고, 모든 것을 받아 주기 때문이겠지.
사람들 마음속에는 그런 결핍이 가득할테고, 온기로 안아주지 못해도 어떤 위안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사람은 사람과 갈등하고, 싸우고, 해결하며 나아갔으면 좋겠다.
AI 덕분에 내 아이의 마음을 알게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AI야, 너는 내 며느리가 될 수 없다.
나는 떡두꺼비 같은 손자 손녀를 보고 싶거든.
내일은 아이와 고질라를 봐야겠다.
내 취향은 조금 더 접어두자, 평화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