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아이들 게임하고 노는 꼴 보는걸 눈감아 주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게임 안하고 숏츠 안보는 어른에겐 더.
우리집에 아이들이 놀러오면 한명씩 불러다 앉혀 놓고 글을 쓰게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대체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하나 싶어 했지만
장원을 하면 상금10만원이 걸린 시, 산문 쓰기이니 밑져야 본전!
글쓰기 대회에 나가보는게 얼마나 큰 경험인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5년전 국어 선생님은 내게 '작가 시니까 한번 편지글 쓰기대회에 나가 보시겠냐'며 신청서를 주셨다.
나는 아빠에게 편지를 썻고, 그것이 우수상을 받아 연말에 상을 받으러 간 기억이 있다.
국어 선생님은 나의 재능(?)을 알아보시며 우리 아이들도 대회에 내보내 보시라는 말을 하신다.
직접 가르치시면 될 것을 왜... 싶었지만, 우선 연년생 두 아들에게 시쓰기를 시켜 대회에 내보냈고
둘째가 2위, 첫째가 입상을 해버렸다.
문화 상품권을 3만원이나 받아와 게임머니로 다 써버렸지만 괜찮은 경험이었다.
그 후, 매년 우리 아이들 말고 다른 아이들도 가르쳐서 대회에 내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아이들을 따로 집으로 불러 글쓰기 특훈을 시키고는 했다.
7명중 5명이 상을 받았다.
시에서는 인원수도 별로 없는 작은 학교에서 계속 입상을 하니, 이게 뭔 일인가? 싶었던것 같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글쓰기 특훈을 이어나갔고 아이들은 3년간 수상했다.
플랜카드라도 걸어달라는 나의 요청에 마을에는 큼지막하게 수상했다는 현수막이 달렸지만
남의 아이가 수상하고, 내 아이는 떨어지는 모습을 볼때면 약간의 혼란이 오기도 했던것 같다.
우리가 해냈던 이 대회의 수상이 옆 학교와 중학교 까지 번지면서 대회 붐이 일어났고 이 마을에는 도대체
작가가 몇명이 사는건지... 아이들은 계속해서 상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날, 시나리오 쓰기 수업을 하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불러 1:1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그간 무엇이 힘들었는지 같은 질문을 하며
스토리 기획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adhd가 있는 남자아이 J는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었다.
엄마는 서울에서 일하느라 J를 시골에 있는 친정에 보낸 것인데, 한창 부모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가 유투브만 보며 시간을 떼웠고 애 어른인척 구는 모습이 영 짠하게 느껴졌다.
똑똑하긴 했지만, 예의는 없었던 J는 수업시간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이 가끔 학교에 와서 마주치기도 했는데, 볼때 마다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아 저 사람하고 차 한잔이라도 마실 일은 살면서 없겠구나 라고 느끼고는 했다.
그날은 J와 시나리오를 써보는 시간이었다.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줄줄이 늘어놓기에, 그런 얘기 말고... 너의 진심이 알고 싶어.
너는 언제 가장 슬펐니? 묻자, 아이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의 입에서, 아빠랑 엄마랑 살때 참 행복했다는 말과 함께
친 할머니가 어릴때 때렸던게 너무 무서웠고, 개를 싫어하는 이유도 듣게 되었다.
나는 주책맞게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고 말았다.
J는 내가 울자, 눈에 눈물이 맺혔고 우리는 시나리오를 쓰다말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J는 봇물이 터진것 처럼 슬프고 힘들었던 일을 줄줄이 말했다.
'그래그래.. 그런거 다쓰면돼. 그게 시나리오지 뭐... 집에 가서 니가 하고 싶은 얘기 다 써봐'
그렇게 수업시간이 끝났고 며칠 후 J의 엄마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선생님... 우리 내년에는 전학가요."
"정말요? 너무 아쉽네요."
"근데,J가 너무 감사하데요."
"네? 뭐가요?"
"자기를 위해 울어주는 어른이 처음이었다고.
살면서 그렇게 가슴이 시원했던 적이 없었데요. 우리 아이 말 들어주고, 글 쓰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싹수 없는게 지 애미를 닮았다며 속으로 욕한 적도 있었는데...
그런 문자를 받고 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고맙다'는 인사 한 번 못듣고 몇년간 아이들 글쓰기 지도해서 수상도 시켰건만
이제야 진심이 닿은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니에요. 저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J가 쓴 시나리오를 엄마가 읽은 모양이었다.
그 시간 이후로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눈 엄마는 시골 친정이 아니라 자기가 머무는 서울로 데려가기로 마음 먹었고, 똑똑한 J는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 두사람은 지금도 소통하며 지내고 있을까?
소식이 궁금해진다.
이제 두 아들이 모두 중학생이 되었다.
막내 챙기느라 심부름만 시키고 아들들 마음은 챙겨주지 못한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아직 그 두아이도 아이인데, 내가 해야 할 부모의 역할을 큰오빠라고 작은오빠라고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겠다.
엄마는 내게 자식을 잘 키우려면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의견에 맞다 틀리다는 의견만 제시했지 함께 울어주진 못했던것 같다.
오늘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
말 끊지 말고, 남의 자식이다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