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나는 큰 아들을 '배미새'라고 부른다.
처음엔 베이스에 미쳐 독학을 하더니 아빠와 공연까지 서는 모습을 보여 천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베이스만 치더니
다음은 배구에 미쳐 베이스를 내려놓고 배구공을 시도 때도 없이 던지고, 집에서도 점프를 하고 다녀
나는 곧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장난으로 베이스 다음 배구였으니 다음 '배'는 뭐냐? 며 '배미새'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아들이 학교팀으로 배구대회를 나간다는 소식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응원을 위해 참석했다.
실제로 경기를 처음 봐서 그런지, 어린 시절의 생각이 났던 건지 코트 안에서 짙게 풍기는 땀냄새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중학생 아이들은 신체조건이 꽤나 좋아 성인들처럼 보였고, 목소리에 파이팅이 넘쳤다.
시골 학교지만, 배구로는 우승을 몇 번 한 이력이 있는 아들의 학교 선수들도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군인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학교 학생팀은 단연 돋보였다.
기세와 신체조건만 봐도 우승팀처럼 보이는 상황이어서, 우리 아이들과 붙으면 우리 팀이 무조건 지겠구나
생각한 것이었다.
제발 저 팀 하고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하다는 듯 올라온 그 팀과 붙게 된 아들의 팀.
생각보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나는 목청껏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삑!"
경기를 하는 내내 몇 번이나 심판의 호루라기가 경고를 보냈다.
그건 상대팀에게 '더티플레이'를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상대팀은 기세가 등등했지만 페어플레이를 하지는 않았다.
결국, 승리는 상대팀이 했고 아들은 아쉬워했지만 나는 경기에 매너점수가 들어갔다면 너희가 우승했을 것
이라는 말로 위로를 전했다.
운동선수시절, 태권도시합에 나갔을 때 경기조작으로 점수를 냈음에도 점수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말 그대로 호구를 대주러 시합장에 갔던 것이다.
그때는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먼 자리에서 더티플레이의 상황을 지켜보니 이기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기는 것은 중요한가?
아이들과 체육수업을 할 때면 '경기' 인가 '게임' 인가에 따라 교육방침이 조금씩 달라지고는 하는데
나는 '이기는 쪽' 보다는 '매너 있는 쪽'인 페어플레이를 강조하고는 한다.
페어플레이는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정정당당함과 존중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태도다.
그것이 스포츠가 아니라, 삶에도 적용된 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규칙을 지킨다고 해서, 반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승리를 위해 비열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잘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한편으로는 조금 비겁해도 약아빠진 것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진짜 페어플레이는 '마음의 규칙'이다.
이겼을 때 오만하지 않고
졌을 때 핑계 대지 않고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고, 약자를 조롱하지 않는 태도.
그런 것들 어려서부터 배우면 '이기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진짜 페어플레이 정신은 이기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방식이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서는 게 아니라 상대도 서 있을 때 내가 진짜로 선다는 생각 말이다.
승부욕에 잡아먹혔던 질투쟁이 시절, 나는 남이 잘 되는 것이 극도로 싫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을 버리고 누군가의 승리에 진정으로 손뼉 쳐주지 않으면, 내 삶에 박수를 받을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남이 잘 되는 것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편이다.
아들의 배구 시합을 다녀오고
비록 내가 하는 수업이 방과 후에 하는 놀이체육이지만 스포츠정신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을 놓친 아이에게 아쉬운 탄식 대신, 할수 있다! 는 말을 해주기로 한다.
<신인감독 김연경>을 정말 재밌게 봤는데, 매 회 보면서 울컥 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코트 안에서 범실을 하는 선수들에게도 '할수있어' '괜찮아' 라는 말을 쉴새 없이 해주는 신인감독의 모습에
괜한 용기를 얻게된다.
운동에 영 재능이 없는 둘째 아이가, 아무리 배구를 배우러 다녀도 손이 너무 아파서 못하겠다고 하기에
아파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은 옛말이긴 하지만, 단련이 되지 않고, 어느정도 참지 않으면 그 곳은 계속 아플거라고 말해주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큰 형과 비교가 되어 더 하기 싫은 모양이었는지, 승부욕이라고는 완전히 제거된 인간으로 태어난 둘째 아이의 적성을 찾아주기 위해 운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잘 한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못하는 걸 계속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겠지.
'할수있어' '괜찮아' 라는 응원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나 통하나보다.
이기는것보다 즐기는것이 우선이라는 걸 알때가되면
나는 몇살이려나...
인생, 참 공평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