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백신
6년간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을 하면서 1년은 어쩔 수 없이 체육이 아닌 '영화수업'을 해야 했다.
막내를 갖게 되면서, 사실 수업을 하지 않아야 할 상황이 되었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체육수업은 무리지만, 글쓰기 수업 같은 걸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경력을 살려 '방과 후 영화교실'을 진행한 것이다.
수업의 커리큘럼은 간단했다.
1. 함께 영화를 한편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2. 나만의 시나리오를 만든다.
3. 팀을 짜서 영화를 한편 만든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또! 열정이 타올라버렸다.
3개 정도로 수업을 안전하게 돌리고 끝내려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더 늘어난 이벤트 겸 커리큘럼을 덧 붙여 보자면...
4. 우리가 함께 볼, 보는 영화의 감독이나 작가님을 모시고 gv를 해보자.
5. 직접 연기를 하려면 배우가 필요하다. 연극배우 선생님을 모셔서 연기코치를 받자!!
6. 모든 영상은 사진에서 시작된다.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출사를 나가자!!
7. 작은 학교 영화제를 열어보자!
8. 제작비가 필요해! 제작비를 획득하자!
9.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우리의 영화도 필요해! 단편을 찍자!!
이 무모해 보이는 일들을 나는 임신한 상태로 모두 해냈다.
물론 남편의 도움이 함께 있었지만-
일단 친한 감독 친구들에게 학교까지 와달라고 요청했고, 친구의 영화를 다 함께 보고 감독과의 만남을 가졌다. 아이들은 사인도 받고, 영화에서 주인공이 왜 그랬는지? 같은 것을 물었다. 작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감독과의 만남은 서로에게 큰 보람으로 남았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연기를 할 때 쑥스러워하기에, 연기코칭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술인 친구 중에 연극배우로 있는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부탁했다. 참 감사하게도 그들은 이 먼 거리를 내달려 와도 늘 식사로 퉁친다. 이 빚을 언제 다 갚고 산담?
연기를 받고 나니 아이들이 제법 진지하다. 그중에는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는 아이도 있고, 적성인 줄 알았다가 좌절하고 포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진기를 사서 찍고, 연기를 하고,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자신이 어디에 마음이 더 끌리고 재능이 있는지 추려 나갔고 팀을 만들었다.
직업이 작가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시나리오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직접 감독을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환경이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 친구들과 영화를 찍어 보기로 한다.
나의 주인공은 이번에도 남편 그리고 그의 탭댄서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5일 정도 시간을 내서 무보수로 영화를 하나 찍어 영화제에 냈지만 당연히 탈락이었다.
그래도 그때 종일 웃고, 진지하게 임하며 잘 놀았던 기억이 나서 그 후로도 한편 더 찍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선생은 사라지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작은 학교 영화제>를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동진 영화제처럼 학교 운동장에 앉아 함께 영화를 보는 낭만이란!
내가 지역의 유지들을 만나고, 영화 관계자들까지 만나 학교 작은 영화제를 마치 있는 것처럼 홍보하자
남편도 탄력을 받아 급기야 시장실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일이 커져서, 힘센 충남! 을 각인 시킬 수 있는 영화제면 지원받을 수 있는 경로를 모색해 보자는 얘기까지 시청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으니... 우리 부부는 참 무모하고 용감했던 것 같다.
점점 배가 불러오는 만삭의 임산부가 이 같은 일을 저지르면서도 매주 부천까지 기차를 타고가 괴담캠퍼스
라는 부천영화제에 참석했다. 아기의 태동이 마치 내게 "엄마 달려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단편 영화는 시도만 하고 끝나 버린...
각자의 숏츠로 수업을 마무리 했다.
난리법석을 떤 것에 비해, 아무결과가 없어 아쉬웠다.
소문난 잔치 인 척 해놓고, 먹을게 없는것 같아 민망했지만, 아이들은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
각자의 콘티노트에 시나리오를 한편씩 써냈고, 자신의 감독, 피디, 작가 같은 보직 안에서 고민하며 회의했다.
수업이 마무리 되던 날, 둘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어요"
아이는 시내에 만화가 선생님이 운영하는 만화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이제 그 곳에서 선생님과 가장 좋아하는 괴물을 그리며,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고 하더라.
이 정도면 누군가의 진로에 미약하게 나마 도움이 된 걸까?
수업시간에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느냐는 말에 한 아이는 '셔레이드' 라는 말을 했다.
<셔레이드: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 아래에 숨겨진 또 하나의 의미 구조>
셔레이드란 장면을 직관적이지 않게 은유하듯 표현하는 것인데
예를들어 화가나는 장면에서 "으아 나는 화가났어" 라고 말하지 않고, 전기포트의 물이 끓게 한다던가
와장창 유리를 깨트린다거나 하는 돌려까지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이것을 보물찾기 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하나 더 배운다.
1-9까지 모든 것을 진행하고도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10번째는 수업의 월 말에 팝콘데이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에 제안했다.
학교는 흔쾌히 강당을 내어주었고, 우리는 보고 싶은 영화를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보며 팝콘을 먹었다.
학교 아이들로는 부족했는지 소문이 나서 아래 병설유치원 아이들도 금요일마다 놀러오고
선생님들도 오셔서 모두 함께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다 먹은 아이는 안 먹는 아이것을 슬쩍 뺏어 먹다 걸려 혼나기도 하고
조금 더 달라는 표시로 씩 웃어보이는 아이에게는 내것을 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옥수수처럼 자란다.
모두 같은 옥수수로 시작하지만 터지는 순간은 제각각이다.
언젠가 팡! 하고 자기만의 소리를 내며 터져오를 순간을 응원하며 우리는 금요일마다 팝콘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