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매달리기

방과 후 백신

by 모은수

체력장에서 반드시 하는 것이 바로 '오래 매달리기'다.

그냥 매달리기도 아니고, '오래' 매달려야 하는 것이 시작부터 부담이다.

운동선수였지만 손아귀에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나는 어딘가에 매달리는 걸 정말 못했던 학생

이었다. 악착같이 매달리면 2분도 거뜬할 것 같지만, 도무지 왜 오래 매달려야 하는가? 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해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렸다.


산은 왜 올라가? 다시 내려올 텐데.

왜 매달려있어?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던 거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칠 때에는 왜 오래 매달려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한다.

오래 매달리기는 턱걸이보다 부상 위험이 적어서 기초 체력 평가를 하기가 좋다. 그래서 학교 체력장에 많이

쓰였다고 한다. 자기 체중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보니 얼마나 자기를 잘 지탱하는가를 보고, 코어를 평가한다. 단순 팔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전신 운동인 셈이다.


손아귀에 힘이 있는가, 없는가로 노화의 지표를 확인하고 오래 매달리기는 일상생활 과도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물건을 들거나, 넘어질 때 잡아내는 그런 능력들.

아이들은 초를 다투며 철봉에 매달려서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틴다.

나는 가만히 초시계를 들고 아이들의 표정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나라는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자랐을 때

나는 상담선생님으로부터 회피와 의존이 심각하게 높지만, 그만큼 의심지수가 더 많아서 상당히 독특한 케이스의 사람이라는 얘길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버티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버텨봐야 소용없고, 성공 못하면 실패라는 흑백논리적

사고를 갖게 된 것이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에게서 자주 보이는 양상이랄까?


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새삼스레 매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빈 운동장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니 살짝 점프를 하면 닿을듯한 높이에 철봉이 있다.


읍! 하고 숨을 마시며 탁! 매달렸지만 5초도 버티지 못하고 툭 떨어진다.


와...


저질스런 체력에 1차 당황했고


다시 한 번 , 읍! 했을때 10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바로 내려오게 된다.


그때부터 였다. 오래매달리는 걸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것은.

하루에 30초씩만 매달려도 무엇이든 해낼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매일 초를 늘려가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철봉을 사서, 집 문 사이에 매달아 버텼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꾸 매달려 있는게 이상했는지 '뭐하냐?' 물으며 자기들도 따라 매달리기 시작했고

현재 큰 아들은 원숭이 수준으로 철봉에 매달리는 최강 체력을 자랑한다.

나는 여전히 매달리는 것을 잘하지 못하지만, 이제 '저걸 매달려서 뭐하냐?' 는 생각에선 벗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일상과도 가까운 사고였다는 것을 매달리면서 깨달은 것이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저거 해서 뭐해?' '잘 할 수 있을까?' '오래 못하면 어쩌지?' 같은 사소한 부정들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매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기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하는 입장에서도, 시키는 입장에서도

'저건 왜 해야 하는가?' 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싶어한다. 왜 제자리에서 멀리 뛰어야 하는지, 1분안에 윗몸일으키기를 30개 이상은 해야 하는 것인지, 발끝보다 손끝이 더 멀리나가서 깊숙이 엎드려야 하는 유연성이 필요한 것인지, 준비 땅! 소리에 이를 악물고 뛰어

초시계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인지...


그것들은 모두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연습의 일환이다.


오래매달리기 위해서는 몸에 힘을 좀 빼야한다.

그리고 손아귀와 팔 그리고 어깨, 복부의 힘이 일정하게 들어가야 하며 엉덩이와 아랫배에도 힘을 주면 매달리는 힘을 조금 더 분산시킬 수가 있다.


시간을 세거나 계산하기 보다는 약간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을 멈춰야 한다.

힘들어 죽겠네 라는 생각보다는, 아 지금 내가 이런 상태구나, 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다.

모든 걸 한 부분으로만 해결하려 하면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힘을 분산 시켜야만 한다.


이를 악 물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 오래매달리기의 핵심이 아니다.

자기의 한계를 알고, 스스로 내려올 줄 아는 것.

억지로 버티다 떨어지는 것과 스스로 놓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




고질병인 허리디스크에는 걷는 것이 가장 좋고, 협착에는 매달리는 것이 좋다고 해서

매달리기를 조금씩 늘려보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다.

나는 여전히 몇초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볼수 있는 지혜는 언제가 되야 생겨날까?

아마도 매달리기를 숨쉬듯이 할때가 되어야 하겠지.


오늘도 아이들의 체력테스트를 진행하며, 오래 매달리기의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1초만에 떨어지는 아이도 있고, 3분이 넘게 매달리는 아이도 있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손바닥은 아파온다.

그럼에도 도망칠 핑계가 거의 없어서 자기 자신과 1:1로 마주해야만 하는 오래매달리기.


우리는 생각보다 그 정직한 고통을 싫어하는 존재들 이다.

정직한 고통을 받아들일때 비로소 삶의 근력이 생겨나겠지.


그러나 우리는 이미 모두다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관계와 책임 이루지 못한 꿈과 하루의 무게에.


오래 매달리기 하나에 어른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다 일러줄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이미 매달리는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1초만.. 1초만 더..버티는 아이들!

그 1초가 쌓여 분명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삶이 무겁게 느껴지는가.

오늘도 자기의 무게만 견디면 되는 하루다.

시간은 절로 지나가니, 몸에 힘을 좀 빼보자.





토요일 연재
이전 11화전교생이 생일 파티에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