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생일 파티에와버렸다.

방과 후 백신

by 모은수


조금 촌스럽지만, 나는 가급적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해주려는 편이다.

생일에 대한 트라우마가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7살쯤 아무도 해주지 않는 생일파티가 하고 싶어, 엄마를 졸라 과자 몇 봉지를 사서 밥그릇에 담고

주스 같은 걸 사서 동네 친구들을 불렀는데, 아무도 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물론 다들 친한 친구였지만, 어린 마음에 자기 혼자 상 차리고, 남의 스케줄도 묻지 않은 채 부르러 갔다가

모두의 부재에 실망하고 돌아와 울면서 감자깡을 씹어먹었던 기억이 33년이 지나도록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꼭! 해주려고 하는 극성부모였다.

그러다 보니,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초대를 하지 않으면 서운해할 것 같아 매번 전부 다 초대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전교생이 와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일단 전교생이 집에 오려면 차가 필요하다.

카니발과 다른 승용차 두대까지 합쳐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케이크부터 과자 치킨 피자 등등으로 상을 꽉 채워 음식도 준비한다.

아무래도 프로그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에 곧 문 닫기 직전인 자연사 박물관도 예약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 뛰어놀아본다.


우리 아이들은 그 누구도 생일 파티 해달라 소리를 하질 않는데, 엄마혼자 1년에 딱 한번 있는 그날을 위해

온갖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모습을 부러워한 친구는 "야 우리 애 생일 파티도 네가 해주면 안 되냐?" 물었고, 어쩌다 보니 그들의 자녀 생일도 우리 집에서 하는 이상현상이 종종 발견되기도 했다.

우리는 뭐 이런 경우가 있느냐? 며 낄낄 거렸고,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왜 좋잖아~" 하며 웃고 넘겼다.


무모함 속에는 낭만이 있다.

나는 이 낭만이 좋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도 오래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문제는 바로, 돈이었다.

어릴 때는 집에서 하는 생일파티가 괜찮았지만, 아이들은 커갈수록 '키즈카페'나 '외식'을 원했고

전교생을 데리고 키즈카페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몇 명만 데려가자니 그것도 마음에 걸린다.

한 번은 10명 정도만 키즈카페에 데려가 생일 파티를 한 적도 있었는데 3시간 만에 50만 원을 써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아이들의 태도도 문제였다.

엄마가 당연히 생일 파티를 해주다 보니, 이젠 '해주시면 안 돼요?'가 아니라 결제를 맡겨둔 것처럼 요구하기

시작했다. 누굴 탓하랴, 다 내 잘못이지.

아무래도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더 이상 생일 파티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이제 중학교부터는 가족들끼리 케이크를 켜거나, 친구들하고 따로 시내에 나갔다 오는 게 좋겠어"


아이들은 서운한 기색 없이 그러자고 했지만

정작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1년에 한 번 하는 생일파티를... 이렇게 재미없게 하는 것이 맞아?





2년 정도 생일파티 소강상태.

24년 8월 15일에 태어난 공주님의 돌잔치를 나는 1년 전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해 금값이 한돈에 50만 원이 넘었다. (지금은 100만 원이지만 ㄷㄷㄷ)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집에서 조촐하게 식구끼리 밥을 먹고 말려고 했는데, '평생에 다신 없을 막둥이 생일을 이렇게 지나칠 것이냐?' 묻는 사람들 덕에 나의 생일 파티 플래너 심장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금 대신, 떡을 해주거나, 케이크를 해주거나 하는 식으로 파티를 함께 준비했고

집안의 거실에 4인용 상 6개를 펼쳐 아이의 돌잔치를 시작했다.

공연은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준비한다. 큰오빠의 기타와 작은오빠의 피아노 연주, 자리의 손님들이 노래를

불렀다. 막내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흥얼거린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000~ 생일 축하합니다"


주책없이 눈물이 터진다.

비싼 놈의 금을 기어이 주고 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막내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나는 한동안 생일이 오는 것이 싫었던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생일이 다가오면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다.

서운한 마음도 갖기 싫고, 기대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아마도 그땐 불만이 많아서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일이 돌아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아이들의 생일에 편지를 써주려 한다.

그렇게 써도 편지는 앞으로 50통이 되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시간은 참으로 덧없다.


생일 초 앞에서 우리는 두 손을 모으고 초를 끄기 전에 소원을 빈다.

어린 시절에는 '인형을 사주세요' 같은 물질적 바람이었다면 언제부터인가 '가족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라는

소망을 빌게 되는 것 같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홀로 눈을 감고 간직하는 1-2초의 짧은 시간을 모두가 함께 지켜본다.

그 찰나는 정말 아름다운 순감임을 이제야 아는 나이가 되었다.


케이크의 초가 늘어난다.

나이를 세기보다는 꺼져도 다시 켜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한 살을 더 얻은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하나 더 내려 놓는 시간이다.


우리 태어나길 참 잘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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