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품 불가 건조기, 결국 배운 건 ‘관계’였다

세게 맞서느냐, 부드럽게 흘려보내느냐

by 한 걸음

좁은 원룸 부엌 한쪽, 냉장고와 세탁기 사이에 애매하게 자리 잡은 건조기. 작년 11월 큰맘 먹고 샀지만, 정작 자주 쓰지 못한 채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다. 여름부터는 ‘당근마켓에 올려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9월 24일, 8만 원에 게시글을 올렸다.


처음엔 연락이 쏟아졌다. 그런데 약속을 해놓고는 사라지거나, 거래 당일 갑자기 취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안 팔리나 보다’ 싶어 마음을 접으려던 순간, 9월 28일. 예배 중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구매 가능할까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괜히 기쁨을 티 내면 안 살까 싶어 최대한 담담하게 답했다. “네, 구매 가능합니다.” 약속된 시각에 만나 건조기를 확인한 그는 시원하게 거래를 마무리했다. 드디어 짐 하나를 덜어냈다는 안도감에 그날 하루는 유난히 가벼웠다.


그런데 저녁에 걸려온 연락. “건조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분명 출발 전 확인했을 땐 잘 되었는데…. 상대방은 반품을 요구했고, 나는 ‘반품 불가’라고 적어둔 터라 단호히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어머니가 내 손을 막으며 말씀하셨다.

“기분 나쁘더라도 좋게 끝내라. 억울함을 지키는 것보다 관계를 원만히 마무리하는 게 더 현명하다.”


그 말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결국 반품을 받아주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잠시 후, 상대방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직접 분해해 보니 건조기 내부 벨트가 끊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고칠 수 있는 문제라며 벨트값만 보내주면 본인이 고쳐서 쓰겠다고 했다. 순간 미묘했던 감정들이 풀리면서, ‘아,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벨트값 2만 원을 송금했고, 그는 “감정적으로 대응해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그렇게 이번 거래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침말


모든 상황은 예기치 않게 벌어진다. 하지만 그 상황을 내 뜻대로 밀고 나가야하고 더욱 세게 받아쳐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

거센 파도가 모든 것을 덮으며 쓸어버릴 수는 있지만 피해자와 파도라는 가해자가 생기는 것보다 잔잔한 시냇물 같은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넘기다보면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번 일 같이 긍정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흐르는 시냇물에 감정을 담가보자.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파도가 될 것인가, 유연하게 흘러가고 넘어가는 시냇물이 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