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안보로 흔들리는 세계, 산업의 미래

3부 흔들리는 세계와 산업 10장 기후 위기와 ESG, 지속 가능성

by 한재영 신피질

기후변화의 현실


2025년 여름, 한국은 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계절을 보냈다. 전국 평균 기온은 25.7도로 1973년 기상 관측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열대야와 폭염 일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에 도시는 잠들지 못했고, 노약자와 노동자들은 건강 위험에 노출됐다. 그러나 이 폭염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50도에 육박하는 혹독한 더위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유럽 남부는 대규모 산불과 가뭄으로 고통받았다.


남미에서는 강수량 부족으로 농작물이 시들어 갔다. 이제 기후위기는 먼 미래가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현재형의 위기다.


climate change.png



지정학과 전쟁이 불러온 충격


기후위기의 충격은 자연재해에만 머물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곡창지대의 공급을 흔들어 전 세계 곡물 가격을 급등시켰다. 흑해의 항구가 봉쇄되자 밀과 옥수수, 해바라기유 수출이 급감했고, 세계 곳곳의 빵값이 동시에 올랐다.


이 전쟁은 에너지 안보 문제도 드러냈다. 러시아산 가스와 석탄에 의존하던 유럽은 혹독한 겨울을 경험했고,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동맹과 거래가 줄지어 등장했다. 지정학적 갈등은 이제 무기와 국경의 문제를 넘어, 식량과 에너지, 물류망과 반도체까지 ‘무기화’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식탁으로 번진 기후위기


올여름 한국의 상추와 오이, 수박과 참외 가격이 두세 배로 뛰었다. 폭우와 폭염은 작물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병충해를 늘렸으며, 수확량을 급감시켰다. 여기에 전쟁으로 인한 국제 곡물 공급 불안, 각국의 수출 제한, 비료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더해지면서 식탁 물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적으로는 커피, 카카오, 올리브유 같은 주요 작물의 가격이 폭등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빙하가 녹는 먼 나라의 뉴스가 아니다. 바로 오늘 장바구니 속 채소값과 빵값에서 체감되는 위기다.




ESG와 RE100, 유행의 퇴조와 본질의 부상


지난 10여 년간 기업과 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군 단어가 ESG였다. ESG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기업 경영의 핵심 기준으로 삼겠다는 흐름이다.


처음에는 이미지 관리나 투자 유치 수단처럼 보였지만,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새로운 잣대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더해 RE100이라는 흐름도 나왔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참여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들도 주요 고객의 요구 때문에 동참하고 있다.


다시 말해, RE100은 단순한 친환경 구호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기 위한 입장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ESG와 RE100이라는 단어 자체의 열기는 줄어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텍사스등 ESG 투자를 금지하는 주법이 등장했고, 중국은 경기 둔화를 이유로 석탄발전을 늘리고 있다.



반대로 유럽은 여전히 강경하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의 대가를 치른 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동시에 확대하며 탄소중립과 RE100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단순한 환경규제가 아니라 무역질서를 재편하는 도구가 되었다.


결국 ‘ESG’와 ‘RE100’이라는 이름은 퇴조했을지 몰라도, 기후위기 대응은 오히려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압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원자력의 부활과 그림자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기후위기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변동성이 크고,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반도체 산업은 오히려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그래서 세계는 다시 원자력을 주목한다.

미국과 일본, 중국, 심지어 독일까지 원전 재가동과 신설을 추진 중이다.

한국 역시 한때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다시 원전을 미래 에너지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원전은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매력적인 해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용 후 핵연료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매년 수천 톤씩 쌓여가는 연료봉은 수십만 년 동안 방사능을 방출한다.


지금은 원전 부지 내 수조와 캐스크에 임시 보관하고 있지만, 저장소 포화와 장기적 안전성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원자력은 깨끗한 전기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류가 아직 책임지지 못한 거대한 그림자를 남기는 에너지다.


neuclear power.png


한국 정부의 방향


이재명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원전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유지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선언했고, 해상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국가적 차원에서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산업단지와 기업에 RE100 참여를 요구하며 ESG 공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폐기물 처리, 재생에너지 간헐성, 전력망 확충, 주민 반발, 기업 부담 등 현실적 과제는 여전히 크다. 공약과 실제 실행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가 관건이다.



흔들리는 세계와 지속가능성의 조건


기후위기는 단순히 지구의 평균 온도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산업, 식량, 안보, 일상 모든 영역을 동시에 흔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정학이 얼마나 쉽게 식량과 에너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ESG와 RE100의 유행은 잦아들었지만,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과제다.

원자력의 부활은 현실적 해법처럼 보이지만, 폐기물이라는 장기적 그림자가 뒤따른다.


유럽은 원칙으로, 미국은 산업전략으로, 중국은 이익 계산으로 기후위기를 해석한다.


한국은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 균형 잡힌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속가능성은 단순한 환경 보호가 아니다.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이며, 미래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기후위기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전략은 과연 진짜 지속 가능한가?



이전 24화AI 시대, 작은 기업이 세계를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