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흔들리는 세계와 산업 11장 트럼프 2기와 글로벌 산업 재편
세계가 다시 격동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제 무역 질서는 전례 없는 변화를 맞고 있다.
트럼프는 ‘보편관세 25%’라는 강력한 카드를 들고 나왔고, 동맹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한국은 지금 미국으로부터 약 3,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50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를 요구받고 있다.
한국 2025년 총예산 약 650조 수준이니, 전체 국가 예산의 70%를 투자하라는 심각한 상황이다.
단기간에 현금을 내놓으라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몇 년에 걸쳐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라는 압박이다. 이는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 기반을 미국으로 이전하라는 요구로 다가온다.
미국의 이런 정책은 내부 사정에서 비롯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중산층은 붕괴했고, 제조업 기반은 중국과 해외로 빠져나갔다.
달러 패권 덕분에 미국은 막대한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를 감당해 왔지만, 그 구조는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미국정부 부채 이자 비용은 2025년 약 1조 달러로 연방 세수 5조 달러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하다.
제조업 부활은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 안정과 국가 지속을 위한 정치적 과제다. 중산층을 살려야 미국이 유지된다는 절박감이 트럼프의 모든 정책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같은 동맹국도 예외가 아니다.
관세 압박과 불완전한 합의
한국 내부에서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협력이라기보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같은 한국 주력 산업을 송두리째 가져가려는 강압에 가깝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특히 최근 현대자동차 배터리 공장에 파견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비자 문제로 미국에서 체포된 사건은 충격을 주었다. 동맹을 강조하는 미국이 정작 현장에서는 한국 기업과 근로자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불신이 확산되며, 반미 감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무역 협상에서도 불확실성은 크다. 현재 한국은 미국의 25% 관세를 그대로 적용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이를 15%로 낮출 수 있다는 프레임워크 합의를 제시했지만, 아직 세부 조건이 확정되지 않았다.
3,500억 달러 투자, 미국산 에너지 대규모 구매, 환율 관리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어 실제 발효 시점과 범위는 불투명하다. 한국 기업과 국민 입장에서는 “실제로 언제 어떻게 실행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이 남아 있다.
자동차 산업의 위기
자동차 산업은 특히 심각한 문제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 압력에 밀려 미국 현지 자동차 생산을 늘렸지만, 그 대가로 본국의 생산 기반과 부품 생태계가 약화되었다. 이는 일본 제조업 장기 불황의 시작점이 되었다.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도 같은 길을 강요받고 있다. 미국의 IRA 법안은 전기차와 배터리를 미국에서 생산해야 보조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현대와 기아차는 수십억 달러를 들여 미국 공장을 짓고 있지만, 그만큼 국내 일자리와 산업 기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는 반도체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다. 수많은 부품업체와 지역 경제, 서비스 산업이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역 역조와 중국의 공세
한국의 대중 무역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여전히 중국은 최대 교역 상대국이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무역수지는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철강 등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을 추격하거나 이미 추월했다.
한국에게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자 공급망의 필수 파트너지만, 동시에 가장 거센 경쟁자다.
2024년 대중 수출은 1,330억 달러로 전체의 19.5%를 차지, 수입은 1,400달러로 전체의 22.1%로 수출 및 수입 전체 각 국가 중 여전히 1위를 차지했다.
이중 반도체 470억 달러 수출을 제외하면 중국과 거래는 사실상 심각한 무역역조이다. 이미 중국 제품이 모든 분야에서 한국에 범람하고 있다.
유럽의 애매한 줄타기
EU는 러시아 전쟁 등 미국의 압박 속에서 국방비를 늘리고 있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산업은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한다.
그래서 EU는 중국산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보조금 조사를 벌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결별하지 못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략적 자율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안보 우산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생활 물가와 소비자 부담
최근 커피, 과자, 초콜릿 같은 생활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환율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과의 25% 상호 관세가 수입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그 부담이 소비자 장바구니로 전가되고 있다.
관세는 국가 재정에는 이익처럼 보이지만, 서민의 삶에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되어 다가온다.
WTO의 무력화
세계무역기구 WTO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사실상 기능은 정지 상태다. 미국의 반대로 상소기구가 마비되면서 분쟁 해결 절차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세계 무역 질서는 다자 규범이 아니라 양자 협상과 블록별 협정이 중심이 되고 있다. 한국은 WTO 체제의 수혜국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의 격랑
2025년 9월 17일, 중국은 자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엔비디아 AI 가속기 구매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맞선 대응으로, 중국은 수입을 차단하고 국산화를 가속하려 하고 있다. 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한 제재가 아니라 전면적 충돌 국면으로 들어섰다.
같은 시기 중동 국가들도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미국의 안보 우산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위안화 결제를 일부 도입하며 달러 의존을 줄이고, 동시에 미국과의 AI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다중 동맹과 균형 외교가 이 지역의 기본 전략이 되고 있다.
Global South 및 비서방 진영국가들의 부상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이른바 비서방 진영 국가들은 협력을 확대하며 새로운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인구와 자원은 이미 서방을 압도한다.
구매력 기준 GDP에서는 G7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과 서방은 달러 패권과 첨단 기술, 군사력으로 여전히 강력하지만, 세계는 양극화된 두 축의 충돌 속으로 빨려 들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
한국은 이 격동의 한가운데 서 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관세 압박을 피할 수 있지만, 국내 산업과 일자리가 무너질 위험이 크다. 중국 시장을 버리면 한국 경제 절반을 잃는 셈이다. EU와 중동의 줄타기는 참고할 만하지만,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훨씬 더 제약이 많다.
이재명 정부가 최근 외신 기자들에게 “안보는 미국이 중요하지만, 무역과 인적 교류는 중국이 생존”이라고 말한 것도 이 맥락이다.
트럼프 2기의 세계는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미국 내부의 위기와 글로벌 권력 재편이 동시에 작동하는 무대다.
미국의 중산층 붕괴와 제조업 부활의 필요, 달러 패권의 불안, 그리고 그 비용을 동맹국에 떠넘기는 구조가 현실이 되었다.
한국은 이제 피동적인 추종자가 아니라, 생존을 건 전략적 선택자로 서야 한다. 위기의 순간은 동시에 기회의 순간이다. 한국이 이 변화의 파도를 어떻게 읽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