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역사 - 해방 후 특혜 성장

4부 한국 기업 구조를 묻다. 11장 한국 대기업은 어떻게 성장했나?

by 한재영 신피질

해방 직전 한반도에는 약 9천 개의 기업이 있었고, 이 가운데 중요 기업의 대다수는 일본인 소유였다.

공업의 경우 90% 이상이 일본 기업 소유였으며 조선인 기업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대규모 공장과 기간산업은 거의 100% 일본 소유였다.


대부분의 토지 및 광산 등 자원 사업은 총독부 산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담당했고, 금속 광업 금융 중공업등은 미쓰비스, 미쓰이, 스미모토등 일본 재벌기업이 한국 내 다수의 사업체를 담당했다.


식품 및 제조업에서도 조선방직, 소화기린, 아시히 맥주, 삿포르 맥주, 그리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대인조선주식회사등 대부분은 일본인 기업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한국 자본은 방직·무역·소비재 같은 주변부에 국한되었으며, 해방 직전 한국 자본의 대부분은 결국 일본 기업이 소유한 적산 형태였다.


해방 후 일본 적산 기업의 특혜 불하


1945년 해방과 함께 일본 기업은 철수했고, 남겨진 자산은 미군정이 접수했다. 남한 경제의 약 70~80%를 차지하던 막대한 자산이었다.


1947년 미군정이 소규모로 1차 불하를 했고, 대규모 불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 후인 1949년 귀속재산처리법」에 따라 불하가 이루어졌다.


불하 대상자는 적산과 연고가 있던 종업원등과 관계인에게 우선권이 주어졌고, 실제로는 정치인 및 이승만 정권과 결탁한 신흥 자본가, 실력자등에게 대부분의 기업이 헐값에 넘어갔다.


즉 다수 국민이 아니라 소수의 일본기업 연고자와 이승만 정권 협력자와 정치·관료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가들에게 집중되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친일 관료나 기업가들을 그대로 활용하였다.


삼성그룹은 미쓰코시 백화점과 조선생명을 불하받아 신세계 백화점과 삼성화재로 발전시켰다.

현대그룹은 조선이연 금속 인천공장을 불하받아, 인천 제철로 LG그룹은 조선 제련을 불하받아 LG 금속을 설립했다.

해태그룹은 영강제과를, 쌍용그룹은 경기직물과 조선방직을 불하받았다.

석탄 등은 대성그룹, 한국 타이어 조선피혁은 효성그룹, 한화그룹은 조선화약공장판 인천공장을 불하받았다.


이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일본 적산 재산을 불하받아 출발했으며, 공기업등도 일본의 적산을 인수해서 한국전력, 대한 중석, 주택공사등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 진출 자체가 기업가 개인의 역량보다는 정부의 허가권과 불하 결정, 금융·세제 지원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재벌의 성장은 시장에서의 경쟁보다 국가의 정책적 선택에 따라 방향이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6·25 전쟁과 원조경제


1950년 한국전쟁은 산업 기반을 초토화했지만, 동시에 미국 원조경제라는 기회를 열었다.

미국 원조 물자가 밀가루, 설탕, 비료, 시멘트, 의류로 들어왔고, 이를 가공하고 유통한 기업들이 급성장했다.


삼성물산은 전쟁 중 군수품, 면직물, 설탕, 시멘트등 미군 군납사업 참여하며 크게 성장했고, 미군 원조 물자를 배분 도매 하면서 이익을 얻었다.

이후 원조 자금을 바탕으로 삼성은 제일제당을 통해 설탕 가공에, 제일모직을 통해 섬유산업에 진출했다.


LG는 전쟁 중 미군 비누 치약등 공급했으며 이후 생활용품 등 수요가 폭발했다.


한진상사는 전쟁 중 부산항. 인천항등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 항만 하역사업을 독점하며 거대 물류 기업으로 변모하며 대한항공 인수 기반이 되었다.

현대 건설은 미군기지, 군수시설 건설, 전후 복구 사업을 맡았고, 미군 군납 건설계약을 따내며, 본격적으로 기반을 닦아, 60~70년대 해외 플랜트로 크게 성장을 하게 되었다.


이밖에 삼호 경방등 방직업체들이 군복 납품등으로 섬유 산업이 성장하게 되었다. 효성과 쌍용은 방직과 시멘트에서 도약했다.


베트남 전쟁과 수출주도형 성장


1965년 시작된 베트남 파병은 한국 대기업에게 군납 계약과 외화 수입의 기회를 열었다.

현대건설은 미군 기지·항만·도로를 건설하며 성장했고, 한진은 미군 수송을 맡아 대한항공으로 이어졌다.


제일제당과 삼양식품은 군납 식품을 공급했고, LG는 미군 통신장비 납품을 통해 전자산업에 발을 들였다. 베트남 전쟁은 원조 중심의 구조에서 수출주도형 구조로 한국 경제를 전환시켰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여 자본을 축적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건설은 한국군 시설 공사인 기지 도로 항만등 미군 하청을 맡아서 공사 경험과 자본을 축적하여, 70년대 중동건설 붐의 신화를 창조했다. 한진 그룹도 미군의 군수 물자 수송 병력을 맡았다. 미국 정부와 직접 계약해 수송 독점권을 확보해 쌓은 이익 등으로 1969년 대한 항공을 인수하여 항공업으로 확대했다.


이외에도 삼성 물산, LG, 쌍용. 동아 건설등도 베트남 특수에 참여하여 크게 성장했다.



정부 주도 고도성장과 중화학공업화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금융과 자원을 장악했다.

사업 진출은 정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했고,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은 특정 대기업에 집중되었다.


포항제철은 일본 차관과 기술 협력으로 1968년 설립되었고, 울산에는 현대조선소가 들어섰다. 자동차, 석유화학, 기계, 전자 산업이 집중 육성되었으며, 울산·구미 산업단지와 전국 통신망, 고속도로 건설은 대기업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1970~80년대 고속성장과 정경유착


현대는 중동 건설 특수로 외화를 벌었고, 삼성은 1983년 64K D램 양산에 성공하며 반도체 시대를 열었다.

LG는 가전과 석유화학, SK는 유공 인수를 통한 석유화학 기업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이 성장은 철저히 정부 허가권과 금융 지원에 의존했다. 대통령과 총수가 직접 만나 사업권을 나누었고, 세제 혜택과 관치금융은 재벌에게 집중되었다.


서구의 기업들이 시장 경쟁과 혁신으로 성장했다면, 한국의 재벌은 국가 주도의 불균등한 선택과 집중 속에서 성장했다.



1990년대와 IMF 외환위기


1990년대 한국 경제는 세계화의 파도 속에서 부채 의존과 과잉투자로 불안정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동안 원달러 환율은 약 900원대에서 1,600원대로 폭등했다.


대우그룹은 몰락했고 수많은 중견기업이 사라졌다.

그러나 환율 폭락은 삼성, 현대, LG 같은 수출 대기업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삼성은 반도체 수출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고, 현대차는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넓혔다.


국민은 구조조정과 실업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대기업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IMF 구조조정은 재벌 개혁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대와 글로벌화, 그리고 2008 금융위기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DRAM, NAND 플래시 반도체에서 압도적 지위를 확보했고,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휴대폰 시장을 주도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유럽 시장에 본격 진출하며 브랜드 위상을 높였고, LG는 디스플레이와 가전에서 글로벌 강자가 되었다. SK는 하이닉스를 인수해 반도체 중심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에도 충격을 주었지만 원화 약세는 다시 수출 대기업의 경쟁력을 높였다.


삼성은 반도체와 휴대폰으로, 현대차는 자동차 수출로 위기를 돌파했지만 내수기업과 중소기업은 큰 피해를 입었다.


위기 때마다 대기업은 정부의 지원과 환율 효과로 오히려 더 강해지는 구조가 반복되었다.



일본과의 공동운명체적 관계


일본 기업들은 패전 후 철수했지만 기술·자본·인적 네트워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기업이 철수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는 1950년에 6.25 전쟁으로 미군의 병참기지 역할로 일본은 다시 한국에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서 일본은 미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며 산업 기반을 다시 세웠고,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차관과 기술 제휴로 한국 산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 삼성전자는 산요, NEC와 TYC, 포항제철은 일본 철강사 협력으로 세워졌다. 일본 자본과 기술은 한국 대기업 성장 과정에 공동운명체처럼 연결되어 있다.


겉은 미국, 속은 일본


한국 사회는 미국식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기업의 속살은 일본식 DNA를 이어받았다.


민주주의 제도, 기독교 문화, 영어 교육,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영향이지만,

가문 중심 소유, 정부와의 유착, 위계적 조직문화, 공급망 종속은 일본식 재벌 구조의 전형이었다.



요약하면,


한국 대기업의 성장은 식민지 적산 불하, 전쟁과 원조, 베트남 특수,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화, 정경유착, IMF 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최빈국에서 산업국가로 도약했지만, 성장의 본질은 정부 허가권과 금융·세제 지원, 그리고 일본과의 공동운명적 관계 속에서 가능했다.


서구식 자생적 성장이 아니라 선택적 지원과 불균등한 분배가 핵심이었다.


AI 시대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면, 한국 대기업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 뿌리를 냉정히 직시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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