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정부주도 산업정책, 성공의 이면과 한계

4부 한국기업 구조를 묻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by 한재영 신피질

한국 경제의 성장사는 정부주도 산업정책의 역사였다.

1960년대만 해도 자본, 기술, 시장도 없었던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로 올라선 것은 분명 기적이었다.


포항제철, 현대조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선 배경에는 국가의 정책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정부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했다. 은행은 사실상 정책 집행 창구였고, 수출은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 매달 열린 ‘수출 진흥 확대회의’는 기업가들에게는 압박이자 기회였다.


IMF와 세계은행조차 “철강 산업은 불가능하다”라며 반대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포항제철을 밀어붙였고 결국 세계적인 철강 기업을 세웠다. 현대조선 역시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해외 차관 도입 속에서 세계 조선 강국의 기초를 닦았다.

이렇듯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은 한국 경제에 비약적 성장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 성공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왜곡된 구조의 유산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기업을 밀어주면서, 중소기업은 종속적 위치에 머물렀다. 기업가 정신은 약해졌고, 자생적 혁신보다는 권력과의 연결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독일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히든 챔피언 기업이 천여 개에 달하고, 일본에도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지역 기업이 곳곳에 자리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기업만 커지고, 글로벌 무대에서 독자적 이름을 떨치는 중견·중소기업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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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기업에서 히든 챔피언의 국가별 분포 자료 )


재벌의 세습 경영도 문제다. 기업의 장기 전략은 전문 경영자의 경험과 비전보다, 오너 일가의 영향에 좌우되었다. 그 결과 한국 기업은 혁신보다는 안전한 영역을 반복하고, 비합리적 의사결정에 발목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국토의 불균형, 수도권의 과잉 집중

정부주도형 성장은 수출과 대기업에 맞춰져 있었기에, 국토 전체의 균형 발전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수도권에는 인구와 자원이 집중되었고, 지방은 대기업 공장 몇 개 유치에 의존하는 취약한 경제 구조에 머물렀다.


지방의 중소기업과 농업 기반은 정책의 뒷전으로 밀렸고, 자립 경제는 성장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전남, 전북, 강원, 경북등은 지방의 경우 재정 자립도가 현재 30% 이하로 정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가 남긴 교훈

1997년 외환위기는 정부 주도·재벌 중심 모델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기업들은 차입 경영과 무리한 확장을 반복했고,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치하거나 묵인했다. 위기가 닥치자 국민이 고통을 떠안았고, 국가 경제는 순식간에 붕괴 위기를 맞았다.



압축 성장의 빛나는 성과 뒤에 숨겨져 있던 구조적 취약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이제 필요한 새로운 방식


오늘날 세계는 다시 정부 주도형 산업정책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 유럽도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다. 일본 역시 TSMC 공장 유치에 국가가 직접 뛰어들었고,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차와 반도체, AI를 전폭적으로 밀어왔다.


과거 한국이 했던 방식이 이제는 전 세계에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이 방식으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성장이 정체되어 있고, 여전히 재벌 중심과 세습 구조에 갇혀 있다. 또 대기업 포함 중소기업등은 혁신의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세계의 주요 강국이 산업 경쟁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차별화된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앞으로의 정부 주도 모델은 국민의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한다.


민주적 절차와 투명성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고,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함께 성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방 경제를 자립적으로 키우고, 중산층을 두텁게 만드는 정책과 병행될 때, 산업정책은 국민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정부는 방향을 제시하고 기반을 마련하는 조력자여야 한다.


그러나 혁신과 도전은 결국 기업가들의 몫이다. 한국이 다시 한번 도약하려면,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종속이 아니라 수평적 파트너십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식민지 잔재와 특혜, 전쟁과 권력의 결탁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신뢰, 혁신과 공정이 함께할 때, 한국은 또 한 번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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