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해체되지 않는 마지막 실존

by 한재영 신피질

우리 은하의 중심에는 ‘사지테리우스 A*’가 있다. 우리은하의 중심 블랙홀이다.
밤하늘에서 궁수자리(Sagittarius) 방향을 바라보면 그쪽에 우리 은하의 중심이 있고, 그 중심부에 자리한 강력한 전파원을 이렇게 부른다. 궁수자리 그 자체가 블랙홀인 것은 아니고, 궁수자리 방향에 은하 중심이 보인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 사지테리우스 A*는 이제 추정이 아니라, 거의 확정된 실체다. 태양 질량의 약 430만 배, 지구 질량으로 환산하면 1조 4천억 배에 가까운 질량이 극히 작은 영역에 모여 있다. 이 숫자는 단순히 크다는 감각을 넘어, 인간의 직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다.


우리은하 블랙홀 사지테리우스 A*


사지테리우스 A의 사건의 지평선에 해당하는 지름은 대략 2,350만 km 수준으로 추정된다. 태양 지름(약 139만 km) 약 17배, 그 안에 태양 수백만 개 질량이 들어 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이런 존재가 우리 은하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관측 가능한 대부분의 큰 은하들은 중심부에 초대질량 블랙홀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은하마다 하나의 중심, 하나의 ‘보이지 않는 핵’을 품고 있다. 구조만 놓고 보면, 고대의 다신론적 세계관을 떠올리게 할 만큼 묘한 풍경이다.


하지만, 은하의 별들이 블랙홀 하나에 의해 끌려 다니는 것은 아니다. 별들은 은하 전체의 질량 분포, 즉 별·가스·그리고 암흑물질이 함께 만들어내는 중력장을 따라 공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홀은 은하의 가장 깊은 중력 우물로서, 상징적·구조적 중심을 차지한다. 중심에 있으나 지배자는 아닌,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블랙홀은 왜 보이지 않을까. 우리가 쓰는 망원경은 빛을 모으는 도구다. 그런데 블랙홀은 이름 그대로 ‘검다’. 빛조차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블랙홀을 직접 볼 수 없다.

대신 주변이 남긴 흔적을 본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가스가 극도로 가열되며 방출하는 X선, 또는 블랙홀 근처를 도는 별들의 비정상적으로 빠른 궤도 운동이 그것이다.


특히 우리 은하 중심에서 별들의 궤도 관측이 결정적이었다. 몇십 년에 걸친 S2 같은 별의 정밀한 관측 끝에, 과학자들은 부정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이지 않지만, 태양 수백만 개 분량의 질량이 아주 작은 공간에 존재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천체는, 우리가 아는 한 블랙홀밖에 없다.

이 연구로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이 안드레아 게즈와 라인하르트 겐첼에게 돌아갔다.


블랙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우리는 쉽게 “질량이 엄청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끝까지 밀고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인간의 상상력은 붕괴한다.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고체로 떠올리는 철이나 니켈, 우라늄 같은 물질을 아무리 쌓아 올려도, 지구 질량의 1조 배라는 숫자는 인간의 감각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아는 물질에는 분명한 범주가 있다. 고체, 액체, 기체, 플라스마. 아무리 극단으로 밀어붙여도, 중성자별 정도까지가 인간 물리학이 겨우 붙잡아 둔 경계다. 그 너머에서는 더 이상 “물질 상태”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는 순간, 압력·온도·밀도 같은 개념은 정의되지 않는다. 시간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고, 공간은 좌표를 잃는다. 정보조차 ‘밖으로 전달될 수 있는 실체’라는 의미를 상실한다.


블랙홀 내부에서 무엇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는 현재 이론(일반상대론)으로 끝까지 밀고 들어가면 특이점 같은 ‘무한대’를 만나며 멈춘다. 그 무한대는 어쩌면 자연의 실체라기보다, 우리 이론이 부서지는 지점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최근 등장하는 것이 양자중력이다.


중력까지도 양자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블랙홀의 가장 안쪽과 빅뱅의 가장 처음을 같은 언어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양자중력은 아직 ‘완성된 교과서’가 아니라 ‘인류가 오르는 중인 산’에 가깝다.


블랙홀 주변에는 실제로 ‘공전’이 있다. 중심 수 광년 정도의 영역에서는 블랙홀의 중력이 지배적이어서 별들이 직접 그 주위를 돈다. 하지만 태양은 중심에서 약 2만 6천 광년 떨어져 있어서, 우리의 일상은 블랙홀의 중력에 흔들리지 않는다. 블랙홀은 “마구 삼킨다”기보다는, 근처에 먹이가 들어올 때만 먹는다. 우리 은하 중심 블랙홀은 지금은 비교적 ‘조용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조용하다고 해서 무력한 것은 아니다. 블랙홀이 먹이를 먹는 순간, 그 주변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밝은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퀘이사와 활동은하핵(AGN)이 바로 그런 장면이다.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실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나?”

과학이 한 일은 상상으로 신을 만든 것이 아니라, 관측이 강제로 밀어붙인 결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별들이 그렇게 빠르게 도는데, 보이는 질량이 없다면? 중력파가 예측된 파형 그대로 울려 퍼지며 두 천체의 병합을 알려준다면? 블랙홀은 ‘믿음’이 아니라 ‘대안이 제거된 뒤 남은 결론’으로 우리 앞에 섰다.


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자들의 ‘신비’이기도 하다. 실재하지만, 직접 볼 수 없고, 내부는 불가해하며, 그럼에도 우주 질서의 한 축으로 존재한다. 다만 종교의 신과 달리 블랙홀은 말하지 않고, 약속하지 않고, 벌주지 않는다. 오직 법칙으로만 존재한다. 그 차이가 오히려 더 냉정하고, 더 숭고하다.


최근 연구는 이 ‘숭고함’을 더 구체적인 물리로 바꿔 놓고 있다. 중력파 관측은 블랙홀을 “정지된 물체”가 아니라 “사건(event)의 연쇄”로 바꿔 버렸다. 2025년 미국 유럽 일본의 협력한 LVK관측소 (LIGO-Virgo-KAGRA)는 지금까지 중력파로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블랙홀 병합 사례를 발표하며, 최종 블랙홀이 태양 질량 약 225배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이 사건은 2023년 11월 23일 관측 신호(GW231123)로 보고됐고, 블랙홀들이 매우 큰 스핀을 가질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블랙홀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다.


한편 X선 망원경들은 블랙홀이 ‘먹는 방식’을 더 섬세하게 드러낸다. 2025년 말 XRISM과 XMM-Newton 관측은 활동 은하핵 NGC 3783에서, 질량이 태양보다 3천만 배 큰 블랙홀 근처의 급격한 플레어(밝기 폭발) 직후 **빛의 약 20% 속도(약 6만 km/s)**에 달하는 초고속 바람이 거의 즉시 터져 나오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보고했다.



블랙홀이 단지 삼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과정에서 **은하 전체의 가스와 별 형성까지 바꿀 수 있는 ‘피드백’**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또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쪽에서는 M87의 그림자가 해마다 비슷한 크기로 유지된다는 분석이 나와, 블랙홀 주변의 난류 속에서도 그림자 크기라는 ‘기하학적 지문’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보여준다.


2025년에는 M87에서 편광(자기장 구조를 비추는 단서)이 예상보다 복잡하게 뒤집히는 변화까지 보고되며, “블랙홀의 자기장과 제트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이 더 뜨거워졌다.




자아는 이미 해체되었다. 뇌의 모듈, 기억의 재구성, 신경 신호의 패턴으로.
물질도 해체되었다. 원자는 더 이상 단단한 알갱이가 아니라 확률의 구름이 되었다.
현실 세계마저 해체되고 있다. 원자의 깊은 층으로 들어갈수록 우리는 ‘단단한 실재’가 아니라, 계산되고 중첩되며 관측에 의해 결정되는 마치 가상세계 같은 구조를 마주한다.


그런데 블랙홀은 다르다.

블랙홀은 해체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해체되지 않는다. 쪼갤 수 없고, 들여다볼 수 없고, 이론적으로 밀고 들어가면 “무한대”라는 경고만 남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혹시 우리가 이렇게 가상처럼 느끼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상이 아닌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끝내 해체하지 못하는 이 불가역적 존재가 아닐까.


블랙홀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 점은 이제 과학적으로 거의 확정적이다. 별의 궤도, X선과 감마선, 중력파,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이 만든 ‘그림자’까지, 서로 다른 관측들이 모두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실재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존재하지만 이해되지 않으며, 이해되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블랙홀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신이라 불러왔던 존재보다 오히려 더 급진적이다. 신은 말했고, 명령했고, 인간의 역사에 개입했다. 그러나 블랙홀은 침묵한다. 개입하지 않는다. 의지도, 목적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인간은 낮아진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랙홀은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 태도의 대상에 가깝다. 그것을 오래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알게 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더 조심하게 된다. 단정하지 않게 되고, 쉽게 말하지 않게 되고, 모르는 것을 모른 채로 둘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우리는 더 인간다워진다.


어쩌면 블랙홀은 우주가 우리에게 남겨 둔 마지막으로 무너지지 않은 실체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무너지지 않는 것 앞에서 경외를 배워 왔다. 신의 이름이 사라진 시대에, 그 자리에 블랙홀이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블랙홀을 사유와 명상의 중심에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겸손의 기준점이다. 설명하려 들수록 침묵하게 만들고, 이해하려 들수록 인간의 한계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존재. 그런 실재를 오래 사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덜 오만해지고, 조금 더 인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우주는 차갑다.
그러나 그 차가움 앞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온도를 다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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