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기업은 처음에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
기업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한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윤이 생기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에 별 고민 없이 답한다. 기업은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업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식회사는 거대한 위험을 나누기 위해 탄생했다. 대항해 시대에 유럽에서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항해는 그 자체가 거대한 모험이었다. 배 한 척이 떠나면 몇 년 뒤에야 돌아왔고, 폭풍이나 질병, 해적을 만나면 그대로 사라지기도 했다. 이러한 위험을 개인 상인이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자본을 모아 항해에 투자하는 방식이 등장했고, 이것이 바로 주식회사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항해에 투자한 상인들의 마음속에는 분명한 기대가 있었다. 만약 배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향신료는 유럽 시장에서 엄청난 가격에 팔릴 수 있었다. 실제로 한 번의 항해에서 몇 배의 이익이 남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 항해에 투자한 상인은 당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항해가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상인은 분명 이윤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거래는 대부분 한 번의 거래였다.
항해는 몇 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모험이었고, 성공하면 큰돈을 벌고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능한 한 높은 가격에 팔고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것이 자연스러운 전략이었다. 즉 상인에게 이윤이란 한 번의 거래에서 남기는 차익에 가까웠다.
그러나 기업은 상인과 구조가 다르다. 기업은 한 번 거래하고 끝나는 조직이 아니다. 기업은 계속 생산하고, 계속 판매하고, 계속 고객을 만나야 한다. 오늘 물건을 팔고 내일 다시 같은 고객을 만날 수도 있다.
이때부터 논리는 달라진다.
만약 기업이 매번 거래에서 최대한의 이윤만을 추구한다면 고객은 처음에는 제품을 살지 몰라도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회사는 너무 비싸다. 다음에는 다른 회사에서 사야겠다.
경쟁 시장에서는 언제나 다른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높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결국 고객을 잃기 시작한다.
오래 살아남는 기업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한 번의 거래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품질을 높이고 고객과의 신뢰를 쌓으며 지속적인 관계를 만든다. 기업의 목표는 한 번의 거래가 아니라 지속적인 거래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기업의 성격이 드러난다. 기업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다. 기업은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기업은 고객과 관계를 맺고 직원과 협력하고 협력업체와 거래하며 지역사회 속에서 활동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품질을 높이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가치를 만들어 낸다면 사회 전체도 함께 발전한다.
현대 경영학자 **헨리 민쯔버그 Henry Mintzberg**은 이 문제를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이윤은 잘 운영된 조직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 말은 기업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업이 제대로 작동하면 이윤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윤만을 목적 삼기 시작하면 기업은 방향을 잃기 시작한다.
물론 기업의 모습은 시대와 성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대항해 시대의 기업은 항해와 무역을 중심으로 한 상업 조직이었다.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은 공장을 기반으로 한 생산 조직이었다. 철도, 제철, 기계, 전기 산업이 등장하면서 기업은 대규모 설비와 노동력을 조직하는 거대한 산업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의 기업은 장기 투자와 기술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기업의 모습은 다시 변한다. 세계 금융시장이 발달하면서 기업은 생산 조직인 동시에 금융 자산으로도 인식되기 시작했다. 기업의 가치는 공장이나 기술뿐 아니라 주가와 자본 시장에서도 평가되기 시작한다. 특히 사모펀드나 행동주의 펀드와 같은 금융 자본이 등장하면서 기업의 성격은 점점 더 투자 대상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
공기업의 경우에는 또 다른 논리가 작동한다. 공기업은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니라 공공 서비스와 사회적 목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철도나 전력, 수도와 같은 분야에서는 안정성과 공공성이 중요한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기업의 목적은 하나의 단순한 공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업은 시대와 구조, 그리고 소유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국의 경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은 세계 금융 자본주의 체계에 깊이 편입되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자 비중이 크게 증가했고, 기업 경영은 점점 더 주가와 단기 성과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기업의 경영 방향도 변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점점 주주 가치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경영진은 시장과 투자자의 평가를 더욱 의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기업의 장기적 성격을 약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기업이 단기 실적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연구개발이나 장기 투자, 인재 육성과 같은 중요한 요소들이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단기 성과와 장기 지속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특히 최근 기술 산업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반도체나 인공지능, 첨단 소재와 같은 분야는 기술 개발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개발을 시작하고 실제 시장에서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5년,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산업에서는 단기적인 수익보다 장기적인 기술 전략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의 자본 시장은 분기 실적과 단기 주가에 매우 민감하다. 경영자가 장기 투자를 결정했더라도 단기 실적이 나빠지면 시장의 압박을 받게 되고 심지어 경영자가 교체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기업 경영에는 구조적인 모순이 생긴다.
이 문제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서도 한 번 드러난 적이 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이 그 사례다. HBM은 인공지능 연산에 필요한 핵심 메모리 기술로 지금은 AI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품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술을 처음 개발하기 시작한 기업 중 하나가 삼성전자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모바일 메모리와 서버 메모리 시장에서 이미 큰 이익을 내고 있었고 HBM 시장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 결과 HBM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못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HBM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당시에는 시장이 크지 않았지만 인공지능 시대가 오면 고대역폭 메모리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 결과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자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거대해진 HBM시장에 전력투구를 하고, HBM4에서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례는 기업 전략에서 장기적 기술 투자와 단기 성과 사이의 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영속적인 조직이다. 기업은 한 번의 거래로 끝나는 상인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오랜 시간 작동하는 제도적 구조이다. 그래서 기업에는 일정한 철학과 원칙이 필요하다. 기업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기업의 경영 철학은 매우 중요하다. 경영자와 대주주가 기업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고 그 철학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기업이 단기 이익에만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국가에서 헌법이 가지는 역할과도 비슷하다. 국민과 공무원이 헌법을 존중하며 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켜 나가듯이 기업 역시 스스로 세운 경영 철학과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이 사회 속에서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단순히 이윤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 아니다. 기업이 신뢰를 쌓고 가치를 만들며 사회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윤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윤이 생기는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질문은 기술과 자본이 더욱 거대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물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