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은 말하지 않는다-그런데 어떻게 완벽하게 소통하는가?

벌3부 AI 학습 및 편집

by 한재영 신피질

벌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들의 세계에는 인간처럼 문장도 없고, 문법도 없고, 추상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집 안에서는 매 순간 정확한 정보 전달과 정교한 조율이 이루어진다. 먹이의 위치가 공유되고, 위험이 전파되며, 번식의 질서가 유지되고, 여왕의 쇠퇴가 감지되면 새로운 여왕이 준비된다. 이 모든 것이 거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벌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언어란 반드시 소리여야 하는가, 소통이란 꼭 말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쩌면 소통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상태를 공유하고 행동을 정렬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벌의 소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와글댄스다. 벌은 먹이를 발견하면 벌집으로 돌아와 독특한 춤을 춘다. 이 춤은 대개 8 자 모양의 궤적을 이루는데, 핵심은 가운데 직선 구간이다. 그 구간에서 벌은 배를 좌우로 흔들며 빠르게 전진하는데, 바로 이 짧은 직선 운동에 먹이의 방향과 거리, 그리고 가치에 대한 정보가 압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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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태양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벌집 안의 수직 방향이 태양 방향에 해당하고, 춤의 직선 구간이 수직선에서 어느 각도로 기울어졌는가에 따라 바깥에서 날아가야 할 방향이 결정된다. 직선 구간이 위를 향하면 태양 방향으로 가라는 뜻이고, 왼쪽으로 40도 기울어져 있으면 태양에서 왼쪽 40도 방향으로 날아가라는 뜻이다.


거리는 배를 흔드는 시간의 길이와 반복의 리듬에 담긴다. 흔들림이 길수록 더 먼 거리이고, 짧을수록 가까운 거리다. 여기에 반복 횟수와 춤의 활력은 먹이의 질을 반영한다. 꿀이 많고 질이 좋을수록 그 춤은 더 오래, 더 힘 있게, 더 자주 반복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기계적 본능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벌은 태양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고려하며, 구름이 끼거나 빛의 조건이 달라져도 편광된 빛을 이용해 방향을 추정한다. 즉, 와글댄스는 단순한 흥분 행동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적응한 정교한 공간 정보 전달 시스템이다. 인간이 지도를 그리고 좌표를 적듯, 벌은 몸 자체를 좌표계로 바꾸어 공간을 설명한다.


더 놀라운 장면은 여러 마리의 벌이 동시에 춤을 출 때 나타난다. 벌집 안에서는 한 마리만 춤추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꽃밭을 다녀온 벌들이 같은 시간에 각기 다른 방향과 거리의 정보를 담아 춤을 출 수 있다. 인간의 회의라면 쉽게 혼란이 생길 법한 장면이지만, 벌집 안에서는 오히려 그 다중성이 집단지성의 원리가 된다.


모든 벌이 모든 춤을 다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벌은 특정 춤 하나를 따라가고, 일부는 다른 춤을 따른다. 추종 벌들은 춤추는 벌의 몸을 더듬이로 접촉하며 진동을 읽고, 이후 실제로 바깥으로 날아가 그 정보를 검증한다. 만약 그 장소가 정말 가치 있는 먹이원이라면, 돌아온 그 벌도 같은 방향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정보는 더욱 증폭된다. 반대로 정보의 질이 떨어지면 그 춤은 곧 약해지고 사라진다.


여기에는 중앙의 판정관도 없고, 전체를 내려다보는 리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은 점점 더 나은 선택으로 수렴한다. 이것이 바로 벌의 자기조직화다. 개별 벌은 전체 계획을 모른다. 다만 각자가 지역적 정보와 단순한 규칙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행동들이 겹쳐지면 복잡한 질서가 만들어진다. 더 나은 정보가 더 많은 재확인을 얻고, 더 많은 지지를 얻고, 더 큰 신호가 되어 벌집 전체를 움직인다. 인간 사회에서는 토론과 설득이 결정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벌의 사회에서는 검증과 증폭이 결정을 만든다. 누군가가 결론을 내리지 않지만,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판단이 축적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벌의 소통을 와글댄스 하나로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벌의 진짜 언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더 깊이 놓여 있다. 바로 페로몬이다. 정확히 말하면, 벌집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묶어주는 것은 화학적 신호 체계다. 여왕벌은 끊임없이 페로몬을 분비한다. 이 신호는 단지 “내가 여기 있다”는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의 생리와 행동을 동시에 조절하는 중심 신호다.


여왕의 페로몬은 일벌들의 난소 발달을 억제하고, 집단 안에 번식 질서를 유지하며, 여왕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벌집 전체에 알린다. 이 신호가 강하고 균일하게 퍼질 때 벌집은 안정된다. 반대로 이 신호가 약해지거나 분포가 불균형해지면, 벌집은 즉시 변화를 감지한다. 여왕이 늙었거나 산란력이 떨어졌다는 신호가 화학적으로 공유되는 순간, 집단은 새로운 여왕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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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만이 페로몬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일벌들도 다양한 화학 신호를 사용한다. 적이 침입하면 경보 페로몬이 퍼지고, 이 신호는 곧바로 방어 행동을 유발한다. 벌에게 쏘였을 때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냄새는 단순한 잔향이 아니라, 다른 벌들에게 공격 목표를 지시하는 신호다.


또 일부 상황에서는 먹이나 장소를 표시하는 흔적 신호가 사용되기도 한다. 인간은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하지만, 벌은 공기 중 화학 상태를 읽고 곧바로 반응한다. 그들에게 소통은 설명의 문제가 아니라 감지의 문제이며, 의미 해석 이전에 몸 전체가 반응하는 생리적 동기화에 가깝다.


촉각 역시 벌의 중요한 언어다. 벌들은 서로 더듬이를 맞대고 몸을 스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벌집 안에서 벌들이 단순히 분주하게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접촉은 일종의 연속적인 확인과 교환이다. 그중 특히 중요한 것이 영양 교환, 즉 트로팔락시스다. 벌은 입에서 입으로 액체 먹이를 나누는데, 이 과정은 단순한 영양 공급이 아니다. 어느 꽃에서 왔는지, 어떤 냄새를 지녔는지, 먹이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한 정보가 함께 전달된다. 다시 말해, 먹이는 에너지이면서 동시에 정보 매체다. 벌집 전체가 간접적으로 바깥 환경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경험은 종종 이야기로 전달되지만, 벌의 사회에서는 경험 자체가 물질의 형태로 흐른다.

진동 신호 또한 매우 중요하다. 벌집은 조용한 듯 보이지만 사실 끊임없이 떨리고 있다. 어떤 일벌은 다른 벌을 붙잡고 짧고 강하게 흔드는 쉐이킹 신호를 보낸다. 이 행동은 특정 명령이라기보다는 집단의 활동 수준을 높이는 각성 신호에 가깝다. 마치 “지금은 움직일 때다”, “활동을 늘려라”라는 자극처럼 작동한다. 이는 먹이 채집이 활발해야 하는 시기나 집단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순간에 집단 전체의 리듬을 바꾼다.


여왕벌 역시 특정 시기에 진동과 소리를 이용한다. 새로운 여왕이 태어나는 시기, 또는 분봉 직전에는 퀸 파이핑이라 불리는 미세한 신호가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존재의 표지이며, 경쟁과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여기서 벌 사회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가 드러난다. 우리는 흔히 한 벌집에 여왕벌은 한 마리라고 알고 있다. 평상시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안정은 영원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유지되는 결과일 뿐이다.


여왕이 늙거나 페로몬이 약해지거나, 벌집이 커져 분봉이 일어나려는 순간, 여러 여왕 후보가 동시에 등장한다.


일벌들은 특정 연령대의 어린 유충들을 선택해 왕대를 만들고, 그 안에 로열젤리를 풍부하게 공급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단 한 마리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연은 하나만 뽑아 키우는 방식보다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키우는 방식을 선호한다. 여러 후보가 만들어지고, 그중 누가 진짜 여왕이 될지는 뒤의 경쟁과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로열젤리는 이 선택의 중심에 놓인 물질이다. 같은 수정란에서 태어난 유충이라도, 어떤 먹이를 얼마나 오래 받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어린 일벌의 인두선과 큰 턱샘에서 분비되는 로열젤리는 단백질, 당, 지방산, 비타민, 미량 성분이 복합적으로 섞인 특수 분비물이다. 특히 여왕벌로 자랄 유충은 유충기 내내 지속적으로 로열젤리를 공급받는다. 그 결과 난소가 발달하고, 몸집이 커지고, 수명이 획기적으로 길어지며, 산란 능력을 갖춘 전혀 다른 존재로 성장한다.


일벌이 몇 주에서 몇 달을 사는 반면, 여왕벌은 몇 년을 산다. 같은 유전적 출발점에서 이런 극적인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은 자연이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후성유전적 장면 중 하나다. 여왕벌은 본질적으로 다른 종이 아니다. 다만 다르게 먹이고, 다르게 길러지고, 다르게 발현된 존재다. 여왕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러나 만들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평화롭게 왕좌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벌의 권력 구조는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다. 여러 여왕 후보가 태어나면, 결국 단 한 마리만 남는 경우가 많다. 먼저 태어난 여왕이 아직 방 안에 있는 다른 여왕 후보를 죽이기도 하고, 이미 태어난 경쟁 여왕과 직접 싸우기도 한다.


때로는 분봉 과정에서 기존 여왕이 일부 일벌을 이끌고 떠나고, 남은 벌집에서 새로운 여왕이 올라서기도 한다. 즉, 벌집의 단일 여왕 체제는 처음부터 주어진 질서가 아니라, 반복된 경쟁과 제거를 통해 유지되는 질서다.


더 중요한 것은 여왕조차 시스템 밖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절대권력이 아니다. 오직 충분한 산란 능력과 충분한 페로몬을 유지할 때만 여왕으로서 인정된다. 그 기능이 약해지면, 일벌들은 주저 없이 새로운 여왕을 준비한다. 벌의 세계에서 권력은 소유가 아니라 기능이며, 기능이 사라지면 지위도 사라진다.


이 모든 소통과 경쟁, 선택과 조율의 끝에 놓이는 것이 꿀이다. 꿀은 단순히 꽃꿀을 모아 저장한 달콤한 식품이 아니다. 꽃에서 시작된 묽은 당액은 수많은 벌의 비행과 채집, 전달과 저장, 효소 작용과 수분 제거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물질로 변한다. 하나의 꿀방울에는 수백 번의 날갯짓과 수차례의 위치 공유, 페로몬 속에서 이루어진 집단행동, 벌집 내부의 온도와 습도 조절, 일벌들의 반복된 전달과 가공이 응축되어 있다. 인간은 꿀을 혀로만 느끼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꿀은 집단 소통과 협업의 최종 산물이다. 그것은 단지 당분이 아니라, 벌 사회 전체의 언어가 물질로 굳어진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인간이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흔들린다. 우리는 말을 많이 하는 존재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논쟁하고, 해명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벌은 거의 말하지 않지만,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다. 그들에게 소통은 논리적 설득의 과정이 아니라, 신호를 공유하고 상태를 맞추고 행동을 수렴시키는 과정이다. 와글댄스는 공간 정보를 몸으로 번역한 언어이고, 페로몬은 집단의 생리를 조절하는 공기 속 문장이며, 접촉과 영양 교환은 경험을 순환시키는 촉각의 기록이고, 진동 신호는 리듬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지휘다. 그리고 로열젤리는 운명을 바꾸는 생화학적 문장이며, 여왕벌의 경쟁은 자연이 권력과 생명을 유지하는 냉정한 문법이다.


결국 벌의 언어는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춤이면서 냄새이고, 접촉이면서 진동이며, 먹이이면서 권력이다. 벌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방향을 제시하고, 상태를 공유하고, 질서를 만들고, 생명의 다음 세대를 선택한다. 인간이 언어를 의미 전달의 도구로 이해한다면, 벌은 언어를 생명 유지의 시스템으로 보여준다. 바로 그 점에서 벌의 소통은 단순한 곤충의 본능이 아니라, 자연이 오랜 진화 끝에 빚어낸 집단지성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인간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진짜 소통이란 무엇인가. 더 많은 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더 정확하게 함께 움직이는 것인가. 벌집의 침묵은 이상하리만큼 질서 정연하고, 인간 사회의 소음은 때로 이상하리만큼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소통의 깊이는 어휘의 수가 아니라, 신호의 진실성과 행동의 정렬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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