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글로벌 공급망 변화 1장 국가별 전략주정
1. LCD 산업에서 경험한 변화의 전조
2010년 내가 삼성전자 LCD 부문에서 노트북·모니터용 패널을 전 세계에 공급하던 시절, 중국은 당시만 해도 한국의 주요 고객이었다.
레노버를 비롯해 TCL, 창홍, 콩카, 하이얼 같은 중국 가전업체들이 대규모 물량을 주문했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삼성의 안정적인 매출원이었다.
그러나 BOE, CSOT 같은 중국 패널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과 대규모 설비 투자로 급격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결국 수익성 악화로 LCD 사업을 중국 CSOT에 매각했고, 이제는 과거 우리가 중국에 공급하던 LCD 패널을 역수입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때 느낀 건, 중국의 굴기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체를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2. 반도체 메모리마저 위협받는 현실
LCD보다 더 큰 충격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다가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과거 중국이 ‘세계의 제조공장’ 일 때 DRAM과 NAND를 대량 공급했고, 한때는 중국향 매출이 전체 메모리 수출의 절반 수준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창신(CXMT, DRAM), YMTC(NAND) 등 기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고,
이제는 양산 가능한 수준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삼성의 중국향 매출은 급격히 줄었고, 앞으로는 메모리마저 역수입될 수 있는 위기까지 왔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HBM(High Bandwidth Memory) 확보를 위해 중국 업체들이 혈안이 되어 있다.
HBM3·HBM3E는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이 독점하다시피 하지만, 중국은 비공식 루트 구매와 자체 개발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HBM 기술 격차마저 좁혀진다면, 한국 메모리 산업의 초격차도 무너질 수 있다.
3. 첨단 분야로 확장된 중국의 굴기
중국의 부상은 LCD와 메모리 반도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배터리, 전기자동차, AI, 로봇, 태양광 패널 등 첨단 제조업 전선으로 확장됐다.
- 배터리: CATL, BYD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석권, 가격·품질 경쟁력 확보.
- 전기자동차: BYD, 니오, 샤오펑이 내수에서 테슬라를 압박, 유럽·동남아 수출 급증.
- 태양광 패널: LONGi, JinkoSolar가 가격 인하와 대규모 생산으로 세계 시장 장악.
- AI & 로봇: 대형 AI 모델, 산업용 로봇 상용화 속도가 매우 빠름.
- 파운드리: SMIC, Hua Hong 등 업체의 생산능력(CAPa) 확대와 기술 고도화.
4. 인재와 인프라의 양적·질적 우위
중국은 매년 수십만 명의 공학·IT 전공자를 배출하며 AI·반도체·기계 전 분야에 공급한다.
파운드리 업체 증가와 함께 수많은 벤처·스타트업이 설립되고, 지방정부까지 창업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기술 생태계를 키운다.
이 방대한 인재풀과 내수 시장 규모는 한국이 단기간에 따라가기 어려운 장점이다.
5. 미국의 견제와 향후 전망
미국은 반도체 장비, EDA 소프트웨어, 첨단 GPU 수출 제한을 통해 중국의 기술 굴기를 억제하려 한다.
IRA, CHIPS Act를 통해 자국 제조업 부활을 시도하고, 중국 첨단 제품에 관세와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중순환’ 전략(내수 강화 + 해외시장 다변화)으로 대응하며 아세안,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중국의 굴기는 단기간에 꺾이지 않을 것이고, 한국은 그 압박 속에서 고부가가치·초격차 전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