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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쟁이 Dec 11. 2021

아버지의 DJ

내가 처음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아버지가 사오셨던 최신 팝송 tape이 발단이 되었다.

tape 안에는 에이즈로 사망한 baltimora의 유로댄스곡 'Tarzan boy', 몽환적인 매력의 eurythmics의 'sweet dreams' 등의 곡들이 담겨있었다.

아버지는 그 뒤로도 종종 팝송 tape을 사오곤 하셨다. 그리고 그 tape들은 줄곧 내 차지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아버지가 좋아할만한 애수에 잠길 노래들을 틀어드리고는 했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는 커피 생각이 나신다며 늦은 밤에도 커피를 찾으셨다.


몇년  아버지의 칠순  우리 가족은 부모님을 모시고 짧은 여행을 떠났다.

그날 밤 나는 예전처럼 아버지의 DJ가 되었다.

그 때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추억의 음악들을 들으며,아버지 앞에서 나는 다시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우리 둘은 또 다시 커피를 함께 마셨다.

"역시 우리 아들이 음악을 기가 막히게 고르네."

만면에 미소를 지으시며 아버지는 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계셨다.


이번 추석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다시 뵈었다.

아버지께서 황금들판이 보고싶다 하시길래 김제 평야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버지가 좋아하실 만한 음악들도 함께였다.


에릭 클랩튼의 'autumn leaves'가 차 안에 흐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우리 아들은 분위기를 알아."

아버지는 처음 듣는 노래에도 금세 취하셨다.

들판과 너무 잘 어울리는 가을노래라면서 활짝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도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오랫동안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신다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신 게 아니었다.

아들과 함께 듣는 음악을 좋아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 에릭 클랩튼의 'autumn leaves'를 다시 듣고 있다.


아버지가 무척 보고싶은 밤.

이후로도 오랫동안 아버지께 추억을 들려드릴 수 있기를.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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