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리코

by 쓰다쟁이

책을 펼친 지 얼마 안 되어 비가 쏟아진다. 이윽고 익숙한 내음이 다가왔다.

코끝을 자극하는 비 냄새. 아! 상쾌하다.

때마침 오디오에서 정밀아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바로 책을 덮었다.

비를 보고 듣고 맡으며 9월의 첫날이 시작됐다.

몇 년 전 아산 탕정의 한 카페를 방문했었다. 시원하게 밖이 내다보이는 통유리가 있는 세련된 건물이었다. 힙한 분위기 때문인지 카페 안 손님은 대부분 20대 같아 보였다. 음료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주문한 커피 잔 옆에 손바닥만한 종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커피에 대한 설명서였다.

‘Petrichor’

곧바로 폰을 열어 단어를 검색했다.

‘건조한 흙 위에 비가 내릴 때 발생하는 흙내.’

‘아! 비가 올 때 나던 그 냄새구나.’ 비 냄새에도 이름이 붙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커피에서 그런 향이 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분쇄한 커피 위에 물을 붓는 모습이 비가 흙을 적시는 것처럼 보인 걸까.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넣고는 이름만큼이나 맛도 알쏭달쏭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비가 오는 날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혼자 빗속을 걸을 때면 코를 킁킁거렸고, 동행이 있을 때는 “지금 이 냄새 뭔지 알아?”라며 잘난 척을 했다. 알면 사랑한다더니 이름을 알게 된 것뿐인데 비 냄새가 좋아졌다.

빗방울이 흙 알갱이에 스며들어 만든 내음.

액체와 고체가 만나 생기는 기체라 생각하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뒤로 여러 곳에서 페트리코란 닉네임을 사용했다.

하늘과 땅이 만날 때 발생하는 향기를 가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