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에 답할 사람은 누구인가_수필

나의 정체성

by 대학생

나는 누구인가_정체성

언젠가 누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누군가는 지금 나에게 있어서 스쳐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순간의 연속인 삶은 컨테이너로 연결된 기차와 같아서 각자의 방향을 가지고 가는 기차들은 우연과 필연 그 어디쯤에 서로를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나와 그 사람도 그랬다. 나의 삶은 그 언젠가에 그 사람의 삶과 꽤나 맞닿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방향으로 가 지금은 멀어졌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은 항상 잘 웃어줬다. 그리고 잘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안정감을 가졌다. 그 미지근한 온도가 내게 편안함을 주었다. 과거를 잘 잊는 사람이라 남들이 연연해 하는 점수에도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해야 하는 게 있으면 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악착같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삶을 유영했다. 그 사람은 내게 있어 짙은 푸른 숲같이 편안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의 삶이나 가지고 있는 성질은 윤슬에 가까웠다. 해가 장소를 가지리 않고 빛을 바다에 산란시키듯이 그렇게 자연히 태어나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일렁이는 작은 윤슬 같은 사람이었다.


그 바다에 황혼이 찾아올 무렵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자신의 방향을 향해 갈 무렵에 나는 그곳에서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봐왔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봤던 나의 수많은 모습 중 시간의 침식을 덜 받은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본질은 시간을 넘어 계속될 테니 그 사람이 봐왔던 나의 고유의 모습을 지금의 내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황혼이 질 때까지 나는 나를 생각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어떤 무언가를 좋아면 그것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다르게 점수에도 꽤나 연연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는 여린 잎을 가졌지만 그저 그렇게 따스한 바람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시련의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잘 넘어지지고 속도가 느리지만 인내를 가진 사람이다. 그게 나인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사람을 고산지대 절벽 끝에 피는 에델바이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잎 클로버가 네 잎클로버가 되는 과정에 대해 듣게 되었다. 상처가 나면서 세잎에서 네 잎이 되는데 신기한 점은 그때마다 꽃말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세 잎클로버는 행복을, 네 잎클로버는 만 분의 1의 기적을 뚫고 태어났다고 하여 행운을, 다섯 잎 클로버는 재운을. 여섯 잎 클로버는 기적을, 일곱 잎 클로버는 진실과 사랑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예순 다섯 잎 클로버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 토끼풀 종들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시련을 통해 극복하면서 자기 성장을 이루어 결실을 맺고 또다시 시련을 맞이하는 그런 종류의 풀이라고. 그리고 이 풀들은 내게 하나 더 알려준 점이 있다. 시련이 꼭 고산지대에 시린 날씨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평범한 땅에 있고 시련도 그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겨울과 봄 그 사이 땅속에서 새싹들이 변화를 맞이할 시기. 나의 첫 교수님은 내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주제로 첫 강의를 하셨고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이라는 단어 아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이 시기에, 나는 다시금 되돌아가 생각하였다. 만약 한 단어로 나를 정의될 수 있게 한다면 신은 날 만들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나를 네 잎클로버라고 나를 정의하는 게 맞는다면 신은 나를 그냥 네 잎클로버로 살게 하셨지 않을까? 나를 과연 한 단어로 정의 내리는 게 맞을까? 에 대하여.

지금의 나는 나를 000이라는 고유명사 안에 살아가는 유기체라고 정의 내리기로 했다. 다가올 언젠가에 나는 작가라는 옷을 입고 누군가에게는 그게 나를 표현하기도 하는 삶을 살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