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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 Nov 02. 2020

숏컷을 쳤다

머리카락은 4년에 한 번 자르는 거야(?)


2019년 7월 탈색 두번 후 리빙코랄색으로 염색

작년 7월, 크로아티아로 떠나기 전 인생 샷 한 번 남겨보겠다며 두 번의 탈색을 감행하고 코랄색으로 염색을 했다. 그때 머리 길이가 날개뼈 가장 밑부분쯤이었는데,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획기적인 헤어스타일 대 변신이었다. 주황색 머리로 7월 크로아티아에서 유얼헤어컬러쏘뷰리풀을 10번쯤 듣고 왔다. 인생 샷도 더럿 남겼다. 염색은 3주 정도 지속되었고, 4주 차 때쯤에 집에서 컬러 트리트먼트로 또다시 코랄 핑크로 색을 입혔다. 하지만 8월, 제주도에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갔다가 하루 만에 색이 탈탈 털려 나왔다. 바닷물에 하루 종일 머리를 담그고 있으니 색이 금세 빠져나갈 수밖에(;)...


9월에 슬금슬금 올라온 뿌리가 보기 싫기도 했고, 9월 말에 몰디브가 예약되어 있어서 뿌리 탈색과 전체 탈색을 한 번 더 했다. 머리색은 상아색에 가까운 색이 되었고, 역시나 집에서 또 핑크색으로 염색을 한 번 했다. 몰디브에 갈 쯤에는 염색약이 거의 빠져서 아주 연한 핑크가 조금 섞인 정도가 되었다. 몰디브에서 탔던 리브어보드 크루들에게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는 별명을 얻고 (다이빙할 때 양갈래 머리를 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 나는 간간히 집에서 염색을 하는 정도만 유지하며 더 이상 탈색은 감행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에서 인생샷 많이 건졌지만 그 중 내 모습이 가장 쬐끄맣고(?) 머리색이 잘 표현되어 찍힌 사진(ㅋㅋㅋ)

그러다 올 1월 코로나가 시작되고, 2월부터 본격적인 칩거(?) 생활에 들어가면서 더더욱 헤어스타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디 한 번 외출할 일이 있을 때라던가, 4월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그냥 산뜻하게 염색을 한 번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방치된 머리카락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랐다. 머리 감고 말리는 게 점점 힘들어져서 지난주, 나는 신랑에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몰디브 가기 전에 뿌리 탈색한번, 전체탈색 한 번을 더 했다 엘사 머리가 되어버렸...(...)

나 숏컷 칠 거다

4년 전쯤 호주에서도 쭉 기르던 머리를 한 번 싹둑 자른 적이 있다. 시원하게 숏컷을 치고 나니, 신랑이 설거지하는 내 뒷모습을 보고 장모님이 오신 줄 알았다며 한동안 나와 낯을 가렸다. 계속 장모님... 장모님... 하고 중얼거리길래 "오서방, 자네 왔나?"라고 한 번 말해주자 기겁을 하며 몸서리쳤었는데, 이번엔 숏컷 선언을 하자 신랑이 장모님 다시 오시는 거냐며 나름 반가워한다. 처음엔 짧은 머리 싫다고 징징 거렸는데, 사실 내가 숏컷이 좀 잘 어울리는 편이고, 주변에서도 다들 숏컷이 낫다고 하니까 신랑도 숏컷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지겨운 탈색머리와 이별을 고하기 위해, 어떤 스타일로 자를까 사진을 골랐다. 반곱슬이라 볼륨매직은 필수이지만, 일단 드라이와 고데기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물론 자르자마자 다음 주에 볼륨 매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미용실에 도착해서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숏컷 치려구요!라고 하자 역시나 예상대로 시술해주시는 원장님도 놀란다. 아깝지 않냐는 말에 머리카락은 어차피 또 기는 거 아닙니까! 하며 당당하게 숏컷을 요구했는데, 아깝지 않냐는 질문과는 달리 원장님은 무척 신난 눈치였다. 탈색된 부분을 잡고 싹둑싹둑 잘라내더니 신나게 가위질을...! 잘려나가는 머리카락만큼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괜히 목도 덜 뻐근한 거 같고. 제멋대로 뻗쳐나가는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다음 주엔 꼭 볼륨매직 예약을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시원했다. 오랜만에 앞머리도 내리고, 훤히 목을 드러내니, 이렇게 가볍고 시원할 수가 없다.

30분도 안되어서 끝났다. 수북이 쌓인 내 머리카락을 밟으며 당당하게 미용실을 벗어났다. 아주 오랜만에 목덜미에 찬바람이 닿으니 허전한 느낌까지 들었다.


ㅋㅋㅋㅋㅋ 선구리 필터를 씌워놨더니 너무 웃기네 ㅋㅋㅋㅋ 암튼 짧게 치고 나니 너무 좋다!!!!

긴 탈색머리를 모두 잘라내고 나니, 주변 반응은 뜨거웠다. 난 소심한 관종 스타일이라, 이렇게 가끔 주목받고 화제의 중심이 되는 걸 좋아한다. 엄청나게 티 나지는 않지만 눈에는 띄는...(ㅋㅋㅋㅋ)

게다가 4년 전 숏컷 이후로 쭉 길러온 터라, 4년 만의 변신이니 주변에서 쉽게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숏컷을 치고 제일 좋은 건 머리 감고 말리기가 너무 편해졌다는 거다. 머리 감고 말리는데 다 해서 10분이나 걸리려나... 아침에 단 10분이라도 수면 시간이 늘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고데기를 안 하면 사방으로 뻗쳐나가기 때문에 머리 말리고 나서 스타일 잡아주는 게 조금 귀찮긴 하지만 그 마저도 5분이 채 안 걸리니까 아침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 머리카락은 또 자랄 거고, 나는 삐죽삐죽 솟아나는 머리카락을 다듬어가며 또 머리를 기를 거다. 그리고 4년 후 다시 숏컷을 치는 그 날을 기다린다. 4년 주기로 찾아오는 나의 작은 변신. 한 번씩 고착화된 이미지를 벗어내는 건 기분전환에 썩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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