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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n Jan 05. 2022

나의 이야기 기록

미대생이 되고 싶어요.

열여섯 살, 여고생이 되었다.

일어나서 씻고, 닦고, 먹고, 학교 가고, 공부하고, 잔다.

여섯 가지 행동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하고 있는 톱니바퀴 같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나에게 누구도 '커서 뭐가 될 거야?'라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될 것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서 죽겠지.

 


대학은 다들 가는 곳이라 나도 당연히 간다고 생각하지만,

공부는 하라고 해서 열심히 하는 척은 하지만, 하기는 싫고,

옆에 앉은 친구의 네모난 누런 화구통이 궁금해졌다.


" 은정아, 거 안에 뭐 들었노?"

"어, 붓이랑 물감, 어제 집에서 할 끼 있어 갖고..."

" 재밌나? 미술 학원."

" 기냥... 와, 니도 해볼라꼬?니도 잘하잖아. 우리 학원 가 볼래?"



담임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친구 따라 대학가에 있는 미술학원에 갔다.

사실,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는 게 목적이었다.

친구랑 대학가에서 자율학습을 제낀 여유를 톡톡히 누린다.

떡볶이, 라면, 순대, 바나나 우유까지 두루 섭렵한 후 도착한 미술 학원에서 난 자유를 봤다.

 

모두들 딱딱한 나무 책걸상이 아닌

나무 이젤을 앞에 두고 앉아서

연필이 사각사각대는 소리로 유혹하고, 몇몇은 머리에 헤드폰을 꼽고 다리를 건들거리고...

알록달록 물감 뭍은 앞치마는 또 왜 그리 멋지게 보이는지...

그 애들의 더러운 손이 내게는 열정으로 보였나 보다.


와! 멋지다.


다음날부터 미술학원 타령이 시작되었다.


 맏딸인 내가

우리가 살고 있던 지방 국립대에서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찍 시집가,

평범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길 바랬던 아버지셨지만,

고난 고집을 꺾을 리가 만무하니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당연히 허락을 받아냈다.



입시 미술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시작해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은 힘들 거라네...

지방대는 별로인데...

서울 상경이 하고 싶은데...

서양화가 좋아 보이는 구만, 이 것도 어렵다네.

지금부터 시작하려면 동양화가 좋겠다는데, 먹물이라... 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거라 난감하지만,

일단 칼을 뽑았으니, 어떡하던지 시작이다.



1988년 여름, 보충수업을  재끼고, 자유롭고, 어마어마한 나의 미대생 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외가 쪽으로 다섯의 이모가 한국 무용, 피아노, 장구, 요리를 전공했고,

아버지도 그림도 잘 그리시고, 서예로 국전에 입상까지 하신 분이시니, 예술가 집안은 아니더라도 예술가가 많긴 하다.

그러니 나에게도 재능이 없진 않겠지.

그런 도 안 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은 자만심으로 부풀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내내

에어컨 찬바람을 벗하며

흰 도화지, 화선지와 씨름한 후 호작질(낙서)같지 않은 그림을 웬만큼 그려내게 되었다.


그러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내 거지 같은 예술혼이, 결벽증이, 완벽주의가 아무데서나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으니...

역시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겨우 엄마, 빠에게나 땡깡이고, 고집이지 내 마음도 들여다볼 줄 모르는 철부지 고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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