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낙제한 아들을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보낸 성장 양육 스토리
그러는 동안 선택해야 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 학년 후배들과 다시 다니든지 아니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던지 말이다. 긴 이야기 끝에 후배들과 같은 학년을 또 다니는 건 죽어도 싫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 전학 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주변에는 가족의 필요 때문에 전학 가는 것으로 알리고 모든 짐을 싸서 올라오던 당시 기분은 마치 한국에서 도망치듯이 하와이로 떠나던 때와 비슷했다. 다른 게 있다면 오랫동안 간절히 바란 뒤 선물처럼 얻은 소중한 기회를 엄마의 어리석음과 아들의 노력 부족으로 아깝게 날려버린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전학 갈 학교를 정하기 위해 정말 많은 기도와 고민을 했다. 일반중학교에서부터 국제중학교, 여러 유형의 대안학교 등 가능한 모든 종류의 학교를 찾고 상담을 받았다. 주위로부터 정말 다양한 조언을 받는 동안 여러 학교 상황에 아이를 생각해보며 장단점을 비교 분석했다. 사실 일반중학교로 전학 가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하면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일반중학교로 가 선행으로 중무장한 또래 속에서 그리고 모든 과목을 다 잘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아들이 과연 잘 버텨낼 수 있을까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전혀 선행학습을 안 한 아들이 한참은 뒤떨어진 상태로 합류해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그리고 모든 과목을 잘해야만 학급에서 겨우 평균에 미칠 걸 생각하니 대다수가 해주는 조언에 전혀 확신이 없었다. 또다시 후발주자로 저만치 앞서가는 아이들을 헉헉대며 따라가도록 하기에는 너무 가여웠고, 강점은 묻어두고 약점을 평균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지나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굳이 전형적인 공교육 모델이 아니라도 오히려 작은 규모의 대안학교 형태가 부족한 학습을 보완하고 학교와 부모가 힘을 합쳐 아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이 최선일지 고민하던 중 결정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를 경험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빨리 영어를 잘하게 된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졌다. 비록 또래보다 현재의 학업 수준은 뒤떨어지지만,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스토리와 경험 그리고 뛰어난 영어 실력이 있지 않은가. 오랜 고민 끝에 그 불씨를 꺼트리지 말고 잘 살려야겠다는 마음의 결심이 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큰 학교에서 무리 중의 평균을 만드는 한 명이 아닌 작은 학교에서 영어와 다른 강점들을 살려내고 더 개발시켜줄 국제학교 형태의 미인가 대안학교로 결정하였다. 사실 국내 교육청에 인가도 받지 못하고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정식 학교도 아닌 곳을 선택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으며 인지도 높은 학교를 선택하는 결정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중요한 결정 때마다 멀리 보고 가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특히 교육은 무엇보다 교사의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 기준으로 보면 어떤 곳은 학원인지 학교인지 잘 모르겠는 데다 교육자로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나 사명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름이 알려진 큰 학교에 다니다가 한 학년이 5명 정도인 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처음엔 실망하고 자존심 상해하기도 했지만 고맙게도 특유의 사회성과 리더십으로 잘 적응해 갔다. 전학과정에서 그래도 부족한 학업을 메꿔놓은 상태라 수업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었고, 소규모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원어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영어를 잘하는 아이, 수학도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 다른 과목도 수업을 잘 따라가는 아이로 노력하는 동안 조금씩 결과는 성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마치 초등학생처럼 학교 다녀오면 붙들고 앉아 그날 배운 내용을 설명하도록 요구할 만큼 이전 학교와는 다른 학업적 자신감을 경험하도록 나부터 노력해 갔다.
사실 평균 이하 성적으로 공부를 못 하는 학생으로 낙인찍혔던 아들이 어떻게 학업성취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는지 더 나아가 우수한 대학 입시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신기하고 감사한 한편으로 뭔가 객관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어떤 결정적인 이유가 아이를 변화하게 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모든 변화의 순간들이 모여 최종적으로 만족할 만한 입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고 어떤 하나의 요인으로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 주요한 요인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최근 한 권의 책으로부터 발견한 것 같다.
정주영 작가의 「하버드 상위 1%의 비밀」에 보면 기존에 주류에서 밀려난 아이 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조명을 켠다는 표현의 내용이 등장한다. 저자는 성적표에서 처참한 기록을 보이던 학생들의 변화 이유를 분석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겉으로 보이는 지독한 노력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환경 속의 부정적인 신호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스탠퍼드 대학의 클로드 스틸 교수 실험을 인용하여, 낮은 점수의 학생들이 부정적인 환경 신호에 둘러싸여 있을수록 학교가 자신이 성공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님을 계속 확인하게 되어 더 경쟁에서 밀려나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마치 아들의 상황을 연구 결과로 분석해 놓은 것 같았다. 만약 아들이 익숙한 환경이란 이유로 한 학년을 유급해 같은 학교에 있었다면, 낙제하고 유급한 학생이라는 부정적인 환경 신호를 계속 받으며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부정적인 신호를 만들어내는 환경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신호를 만들어내고 노력할 수 있는 환경으로 옮겨준 것과 새롭게 잘할 수 있는 무리에서 끌어준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감과 긍정적 자아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신호를 제공해준 것이 낙제생이나 유급생 타이틀을 벗고 새롭게 노력하며 학업성취를 만들어간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다들 그렇게 한다고 선행을 강요당하며 남보다 못한 아이라는 계속되는 신호 속에 학교생활과 학원 뺑뺑이를 반복했다면 지금의 성취는 얻지 못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