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요일

이석증

by 레인보우 미

세상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마구 회전하던 그 순간을 경험한 후에는 나의 삶에 감사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의자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도 내게는 이제 예전과 다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계단을 내려오며 세상이 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릴까봐 벽을 잡고 의지하며 한 걸음 조심히 내딛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그 공포를 순간순간 잊으며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은 내가 건망증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수업할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서 출근을 하고 있는데 웃음이 난다. 내 일이 생겨서 참 좋다.

“선생님 수업은 어때요? 월요일과 금요일 수업도 하면 좋을거 같아서요. 월수금 시간표도 참 좋아요. 애들이 뭐라고 했어요? 싫다고 하지 않았죠?”

“괜찮았어요.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준비하면 될까요?”

세계문화와 전래놀이는 독서 수업보다 준비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는 거절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동안 배운 내용, 수업했던 경험들을 내 안에서 모두 끌어내고 싶다. 내가 주체가 되어서 긴 흐름으로 이끌어가야 하니까, 수업 준비를 위해서 나만의 시간도 계속 늘려가야지 생각한다. 딱 이만큼이 다시 시작하기에 좋은 것 같다. 월수금 오후에만 일하면 되니까,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세상이 온통 나로 가득해지는 느낌이다.


“선생님,배가 아파요. 아침부터 아팠어요...”

“가빈아,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거야? 엄마도 가빈이가 배 아픈거 알고 계시니? 선생님이 얼만큼 아픈지를 몰라서 우선은 보건실에 다녀오자.”

가빈이가 1교시가 끝날 즈음 아프다고 하는데, 가빈이를 달래다 보니 쉬는 시간이다. 갑작스럽게 아프다는 친구가 있으니 당황스럽고 걱정이 된다.

“이제 쉬는 시간이니까 다른 친구들도 쉬고 있어”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계속 아프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본다. 가빈이가 보건실에 다녀오더니 출장을 가셨단다.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는데, 갑자기 가빈이가 젤리 상자에 손을 내민다.

“선생님, 젤리 먹을래요.”

“가빈아, 배 아픈데 젤리 먹으면 더 아플 수도 있을 거 같아. 젤리는 부드러운 음식이 아니라서 집에 가져가서 먹으면 어때? 오늘 너희들 주려고 가져온거니까, 이따 나눠줄게.”

“아니예요. 젤리 하나 먹을래요. 마이쥬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리고는 얼른 젤리를 꺼내서 입에 넣는다.

‘정말 괜찮을까?’

너무 걱정이 되지만 아이가 원하는대로 우선은 지켜본다.

“그럼 천천히 먹으면서 선생님한테 정말 괜찮아지는지 얘기해줘.”

가빈이의 입을 계속 바라본다. 가빈이의 표정을 살핀다.

잠시 후 수업을 다시 시작하는데, 가빈이가 또 나를 부른다.

“선생님, 저 말랑카우 하나 더 먹고 싶어요.”

“가빈아, 배 아픈데 젤리를 더 먹으면 안 될 거 같은데...참아보자.”

그 말을 듣고 가빈이가 갑자기 일어나서 내게 걸어온다. 가빈이의 키에 맞춰 몸을 숙이자마자, 가빈이가 내 귀에 작게 말한다.

“선생님 오늘 늦게 일어나서 시리얼을 한 입밖에 못 먹고 왔어요. 그런데 지금 마이쥬를 먹으니까 배 아픈게 괜찮아지는거 같아요. 그러니까 말랑카우도 먹고 싶어요. 쉬는 시간이 아니면 못 먹어요?”

이 귀여운 생명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웃음이 나려고 하는데,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 크게 웃을 수가 없다.

“가빈아, 우선 자리로 돌아가자.”

“친구들, 방학인데도 우리 친구들이 9시까지 수업에 이렇게 잘 와줘서 고마워. 선생님이 간식으로 젤리를 가져왔는데, 지금부터 선생님이 퀴즈를 내서 젤리를 나눠 줄 거야.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어. 그리고 특별히 오늘은 젤리 받으면 수업 시간에 먹어도 괜찮아.”

그리고 오늘의 책 이야기를 잘 생각해보자고 하면서 아이들과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한다. 오늘의 책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아이들과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빈이도 웃으면서 젤리를 먹는다. 배가 아픈 것과 배가 고픈 것이 잘 구분되지 않는 아이들, 어린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잊고 있었다. 딸이 이제 커서 배고픔으로 인한 아픔을 배아픔이 아니라 배고픔이라고 정확히 표현할 나이가 되고 나니 그 때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6시에 시작하는 역사보드게임 수업에 도착했다. 함께 수업듣는 선생님들이 묻는다.

“왜 이렇게 피곤해보여? 오늘도 수업하고 온 거야?”

몸은 지쳤지만 내 마음은 지금 너무 상쾌하다. 오늘은 너무 좋은 날이니까.


요증은 하루하루가 조심스럽다. 이석증을 경험한 이후로 내가 겁쟁이가 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청나게 큰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위아래로 마구 뒤집어지고, 어지러웠던 그 시간을 보낸 이후로, 내가 변했다. 어지러움이 나타날 때마다 예전처럼 쿨하게 괜찮다고 지나치지 못한다. 불안함이 더 커지고 걱정도 된다. 하지만 제일 힘든 일은 무엇보다 이 불안한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는 들키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하는 일이다. 어쩌면 내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 나를 잘 챙기라고 다가온 기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하지 말고, 당연하다고 하지 말고, 내가 잠시 멈춰야 하는지, 괜찮은지를 챙기면서 살라고 이석증이 내게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받아들인다.




작가의 이전글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