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증
오늘 나는 첫 수업을 하러 간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되돌릴 수 없다. 그냥 부딪치면서 해결하자고 결심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 아침의 하늘은 너무 예쁘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릴 거라고 했지만 내 눈에는 하늘도 아주 파랗고, 구름도 하얗고, 바람도 살살 불어오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림책푸드아트 자격증 수업을 한 시간만 듣고 일찍 나와야겠다고 시간 계획을 세웠다. 9시부터 10시까지 수업 듣고, 10시에 출발해서 11시 40분까지 논현동에 가야 한다. 논현동은 버스를 타고 1시간 10분이나 걸린다. 계약서부터 쓰고 교장 선생님께 인사도 드려야 하니까 늦지 말라고 하셨던 담당 선생님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돈다. 시계를 잘 보면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중얼거리면서 걸어간다. 일찍 가야 한다고 하니까 그림책 선생님은 오늘은 원예수업부터 하자고 하신다. 나 때문에 모두 테라리움부터 만든다. 마음은 논현동으로 가고 있지만, 나의 양손은 색소금을 만들고 있다. 마음에 드는 색상의 파스텔을 고른 후에 소금에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문지른다. 그리고 완성한 여러 개의 색소금을 병에 담는다. 하늘색,노랑색,분홍색,보라색... 색소금 위에 분홍빛 미니 자갈도 담는다. 초록색과 노랑색의 모스 이끼도 올린다. 마지막으로 다육이를 올렸다. 선생님이 테라리움에 넣을 미니 동물을 고르라고 하신다. 나는 흰 토끼를 골랐다. 초록빛 싱싱한 잎이 달린 주황색 당근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아주 야무진 흰색의 토끼를 보면서 다짐한다.
‘난 달리기 하다말고 나무 그늘에서 낮잠 자지 않는,온몸으로 집중하는 토끼가 될 테야.’
테라리움을 가방의 한쪽에 쓰러지지 않게 잘 담고 지하철을 타러 간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버스를 타고 가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교통 상황에 따라 버스는 중간중간에 변동 사항이 생길 수도 있다. 마음을 바꿔서 오늘은 안전하게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 지하철로 가기로 결정했다. 작전역에서 원인재역까지 인천지하철을 타고 가서 수인분당선으로 환승해서 소래포구역까지 가야 한다. 가는 내내 나는 가방을 계속 쳐다본다. 오늘 제출하기로 한 서류 원본을 다시 꺼내서 읽어본다. 어차피 인쇄한 서류라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도 혹시나 빠트린 것은 없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한 장씩 살펴본다. 어제 가방에 잘 담아둔 보라색 파일도 다시 만져본다. 오늘 내게 보라색 파일은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에 용기를 주는 부적이다. 나는 평생을 길치, 방향치로 살아왔다. 아이들과 있을 때 길을 잃어버려서 당황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삼십년동안 못한 일을 극복할거라고 십년 전부터 계속 길찾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길로 갈 때가 많다. 오늘은 함께 지도 앱을 찾아주는 아이들도 없고, 낯선 곳,자주 안 가는 곳에서 길을 찾는 것에 영 자신이 없어서 마음이 더 초조해진다. 오늘같이 중요한 날 길을 잘못 가서는 절대로 안된다. 나 혼자서 길 찾기를 잘해서 무사하게 목표 지점까지 찾아가야 한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눈을 동그랗게 모으고 지도 앱을 찾는다. 심호흡을 하고 차븐하게 바라본다. 지도앱을 켠 휴대폰 화면에 집중해서 긴장하며 길을 걷는다. 소래포구역 2번 출구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학교까지 잘 걸어가면 된다. 2번 출구 왼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속 직진으로만 올라가면 된다. 가는 길에 교차로가 여러 번 나오지만, 건물의 상호 확인에 집중하면 된다. 이대로만 가면 약속 시간내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햇빛이 너무 강해서일까...아니면 다시 이석증이 나타나는 걸까...조금씩 눈 앞이 흔들린다. 휘청거리면 안 된다.
‘그런 일이 내게 또 일어날리가 없다’
내 자신을 진정시킨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을 똑바로 보면서 걸어가자.’
‘오랜만에 나 자신을 찾는다고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나는 괜찮다.’
나의 정신은 몸보다 강하다고 되뇌인다.
드디어 학교 정문이 보인다.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부터 한다.
‘몸이 휘청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진정하면 괜찮아진다. 겁내지 말고 힘내자 ’
그리고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우리 아이들도 점심 먹고 친구들과 놀고 있겠지. 엄마 잘할게!’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멋진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도 담아서 용기를 내 본다.
참 오랜만에 고용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본다. 선생님은 도장도 잘 챙겨오고, 서류들도 잘 챙겨왔다고 하시면서 당연한 일에도 또 웃어주신다. 교무실에서 방과후교실 열쇠를 받고, 출석부를 찾아서 드디어 내가 수업할 교실을 찾아간다. 아직 길 찾기는 끝나지 않았다.
문 앞에서 모여있는 아이들이 있다.
“친구들 안녕, 반가워. 선생님이 빨리 문 열어줄게.”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신기하다. 아이들과 교실로 들어왔다. 맨 앞 컴퓨터 자리에 가방을 놓고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오늘부터 함께 수업하게 되어서 반가워,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이들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나도 아이들을 바라본다.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내 자신에게 말한다.
‘웃자, 더 환하게.’
이제 우리 반 친구들이라고 생각하니 첫 만남부터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궁금해진다. 내가 웃으니 아이들도 금세 따라 웃는다.
드디어 수업이 모두 끝났다. 어떻게 시간이 흐른건지 모르겠다. 오늘의 진도를 다 마쳤지만 계속 부족한 것들이 생각난다. 그런데도 갑자기 뿌듯하다. 아이들이 떠나고 혼자서 교실 정리를 하면서 다음 주를 상상한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른다. 다음 주에는 더 잘 준비하고 와야겠다. 또 어지럽다. 의사 선생님은 이석증은 완전히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언제든지 다시 재발하니까 어지러움이 느껴지면 병원에 빨리 와서 확인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 어지러움에 병원에 가는 건 너무 예민한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긴장해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진정해본다. 교실을 나와서 전철역까지 가는 길이 출근할 때보다 금방이다. 내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간 느낌이다. 그래도 걷다 보니 발이 가볍다. 오전에는 지하철에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5시가 넘으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회사에 출근하려고 전철을 타고 끼여 다녔던 20대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나니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들이 자꾸 떠오른다. 또 혼자서 추억 여행을 하면서 다음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오늘 수업에 결석한 친구들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그만둔다는 아이들이 여럿이다. 수업을 해보지도 않고 그만둔다고 하니 억울한 마음이 든다.
“선생님은 지금 교재가 고학년에 맞다고 생각하세요? 수준이 이렇게 안 맞는데.”
“이번 분기에 구입 완료한 교재이니 그대로 진행하면서, 다음주부터는 고학년에게 도움이 되는 마인드맵 활동 등을 보충해보려고 합니다.”
내 탓은 아니건만 쓴소리는 내가 듣는다. 첫 수업을 했을 뿐인데 난관이다. 어지러움이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서 마음도 불안한데, 일까지 어지럽다. 갑자기 지난번 독서동아리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복 많으신 분들만 여기 오시는거 알죠. 누구나 이 시간에 도서관에서 이렇게 수다 떨고 있지 않아요. 여기 온 사람들은 걱정없이 사시는 분들이죠”
그때는 비꼬는 걸까 싶어서 불편한 말이였는데 갑자기 그 말이 맞았구나 싶다. 지금 나의 두통은 몸의 어지러움인가, 마음의 어지러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