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일차 언제나 퇴근은 꿀맛이지
축구팀이 성적이 나지 않는다고 자꾸만 선수를 포지션만 이리저리 바꿔댄다. 골키페에게 공격을 시키고, 공격수에게 수비를 시키는 일이 이 회사에서는 아무렇지도 앓게 일어난다. 정작 교체해야 할 건 감독이다.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가 대장이 아닌 한 입 다물고 내 일이나 하는 것이 상책이다. 바보짓의 여파가 나에게 미치치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루하루가 치이는 삶이다.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에서 회사에서 치인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삶은 언제나 여유롭고 즐거운 일들만 있어야 한다는 기대라도 한 것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이 정도의 삶도 나쁘지 않다.
회사원의 하루는 뻔한 일들의 반복이다. 지루하다. 하지만, 그 안에 이렇듯 쏠쏠한 즐거움들이 있다.
손님들은 은행의 친절한 겉모습에 잘 속는다. 평생 친구가 되어주고 자기 일처럼 도와줄 것으로 착각하지만, 현실의 은행은 1원 한 푼도 고객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소주잔을 내려놓고 삼겹살을 집어 입에 넣는다. 돼지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람들이 자신의 살을 도려내 불판 위에 올려놓는 순간 두렵지 않았을까. 두려웠겠지. 왜 겁이 안 났겠어. 그런데 막상 이렇게 삼겹살이 되고 보니 별것 아니지. 뭐든 시작하기 전이 가장 두려운 법이다. 막상 시작하고 보면 별것 아닌 일이 많다.
일하며 대하는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성가시게 하고,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더라도 단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은 없다. 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그에게는 일하며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모두 짜증으로 쏟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를 떠나보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하기 위해 직장도 휴직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이 들 때까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기가 빨린다. 항상 하루의 끝에는 체력도 정신도 소진되어 너덜너덜해진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남편 연봉이 조금만 더 오른다면 과감하게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것도 고민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