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결혼하면서 연고지가 아닌 지역에 살고 있다. 이제 1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사는 이곳이 연고지가 되어버렸다.
정규직의 출근을 반대하던 남편이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은 전업주부이기를 바라던 그였다. 그렇기에 간호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네 아줌마들과의 의미 없는 수다도 이제는 지겹다. 이러니 기분이 별로고 우울증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친구였다. 우울증에 좋다는 약은 있으려나? 특별히 약물 치료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매일 해야만 하는 살림과 챙겨야 하는 아이들 덕분에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직이 계기가 되었다. 인생은 살려고 하면 다 살아지는 법이다.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있다. 맞벌이를 결심하게 된 순간이 왔다. 이왕 맞벌이하는 김에 3교대 근무를 하기로 결심했다. 3교대 근무하는 간호사 워킹맘.
처음에 우리 집안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빠는 이직해서 적응하느라 바쁘고, 엄마도 갑작스러운 3교대 출근으로 입병이 나고 난리다. 아이들은 항상 있던 엄마의 부재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도 너무 다행인 점은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토네이도 같은 혼란 속에 머물렀다면 출근하는 삶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적응을 잘하는 동물 아니던가. 차츰 우리 가족은 변화된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정말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그렇게 한 달, 1년이 지나갔다.
이제 매일 해야 할 일은 내가 전업주부로 있을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매일 출근하는 삶을 살고 있고, 주부로의 할 일도 잘 해내고 있다. 여느 워킹맘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채워가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업주부였을 때 우울증이 왔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왜 나는 우울증이 왔던 것일까? 왜 살아가는데 의욕이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가슴 뛰는 뭔가가 없어서였다. 출근하는 삶은 그 전의 삶보다 더 바빠서 영양제를 챙겨 먹기도 한다. 더 힘들고 더 금세 지칠 수도 있는 삶이다. 하지만 출근하는 삶은 내게 소속감과 인정 욕구를 채워주었다. 나도 병원 직원의 하나라는 소속감을 주었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인정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니 마음의 치유가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다. 백지가 무서운 순간도 물론 있다. 그런 백지가 나에게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누군가의 위로가 중요하다고 한다. 특히 가족의 위로 말이다. 하지만 각자의 길로 떠나가 버릴 가족에게 매일 무한한 위로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위로를 백지가 대신해 주었다. 새하얀 백지에 까만 글씨를 채워나가는 과정을 거의 1년이 넘도록 이어오고 있다. 물론 쉬어가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근근이 글쓰기의 끈은 이어가고 있다. 글쓰기를 하며 나를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이제 우울증과는 한 발짝 더 멀어진 느낌이다. 우울증과 아주 무관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친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에게는 우울증을 극복하게 하는 2가지는 출근과 글쓰기다. 가슴 뛰는 이 2가지를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