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뛰어만 다니다가 황당한 계단 구르는 사건으로 두 다리 이외의 것에 지탱하며 다녀보니 항상 다니던 곳도 다르게 보인다.
모든 세상에 대한 판단은 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이란 필터를 거쳐서 보이는 주관적인 모습들인가 보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깁스'란걸 해보니 세상의 흐름도 늦게 맞춰가야 하고 항상 빠른 흐름의 진행 속에도 약간의 게으름을 조미료처럼 달고 있던 생활에 무언가 더 느리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주며 내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물론 내 생활을 다른 때보다 더 부지런히 시작해야 하고 느리게 진행하는 답답함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내게 방패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마 굉장히 빨리 흘러가야 하는 업종에서 나의 상황은 큰 민폐가 되기도 하지만 나만 잘하면 되는 일에선 뒤를 봐주는 사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각하게 되고 신경 쓰인다.
계단을 구르기 전 정말 엄청 짧은 사이 시간에 아름다운 하늘을 찍고 돌아서는 다급한 시간에서 계단에 다리가 엉켜 구르게 된 그 상황은 아름다움과 나의 발을 바꾸게 된 것인가? 의심도 가지만 발을 디딜 수도 없는 통증에 땅을 기으며 수업에 맞춰가려 했던 나의 충성심에 나 스스로가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상황에서 나는 내가 별로다.
어머니의 꿈에서 옮기던 박스의 사과들이 반토막 나고 배 하나가 굴러다녔다는 그 '예지몽'이 내가 계단에서 구르는 장면과 교차됐을 때 나는 더 고통을 머리로 느끼게 되고, 그렇게 끊어지지 않는 초능력 같은 예감으로 나는 길바닥에 나뒹구지 않고 부모라는 자궁 안에서 따뜻하게 며칠을 보낸 후 다시 느려진 사양의 과거 컴퓨터로 다운 그레이드 되어 세상에 내어 보내진다.
2016,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