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처럼
도서관 창가에 앉아 있던 그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햇살이 천천히 기울고, 바닥엔 나뭇잎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와 볼펜의 사각거림 속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조용히 내 앞에 섰다. 복학생 선배였다. 나는 그저 평범한 후배였고, 아무런 예고 없이 하루가 흘러가던 저녁이었다.
“잠깐 나와볼래?”
복도 끝, 문밖으로 나서자 어스름한 저녁빛이 번졌다. 그 선배는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뭔가를 꺼냈다. 작고 노란 꽃 한 송이. 달맞이꽃이었다. 피어난 지 얼마 안 된 듯, 잎사귀 끝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도서관 옆 화단에 피어있더라. 그냥… 너 생각나서.”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꽃의 색이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어딘가 부드럽고 따뜻한 빛이었단 것만은 선명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날 해 질 무렵의 공기. 조금 쌀쌀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졌던 그 순간.
달맞이꽃은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 피어난다.
과학자들은 그것이 진화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낮에는 강한 햇빛과 곤충 경쟁이 치열하고, 밤에는 그 틈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달맞이꽃은 어둠을 기다린다. 해가 기울고, 빛이 약해질수록 그 꽃잎은 서서히 열리며 세상에 조용히 존재를 드러낸다.
식물도 시간을 느낀다. 그것을 ‘일주기 리듬’이라 부른다.
햇빛의 양과 색, 온도의 변화에 따라 식물은 자신의 생체 시계를 조절한다. 해 질 무렵은 달맞이꽃에게 ‘지금이야’ 하고 속삭이는 시간이다. 어느 날의 하루 끝자락,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그 시간처럼.
그래서일까.
그가 달맞이꽃을 꺾어 건넨 그 시간이 해 질 무렵이었던 것도, 왠지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음은, 어쩌면 달맞이꽃처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달맞이꽃은 다음 날 아침이면 시들어 있다.
그 순간에만 피고, 그 순간에만 향기롭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 역시 그날 이후 그 선배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공부하던 책 속 문자보다 더 조용히, 내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달맞이꽃처럼,
감정도 어떤 순간에만 피어난다.
빛이 너무 강하면 숨고, 어둠이 너무 깊으면 움츠러든다. 마음도 식물처럼, 적당한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열리는 법을 알고 있다.
요즘 도서관 근처엔 더 이상 달맞이꽃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 노을이 드는 저녁, 그날의 공기와 비슷한 온도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 묻는다.
달맞이꽃은 왜 해 질 무렵 피었을까.
아마, 그날도 그래서였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