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아래 부모님과 걷다
여름휴가는 언제나 기다려지지만, 유난히 올해의 휴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팔월의 서해 바닷가, 물러가는 햇살을 따라 파도는 조용히 밀려왔다가 또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바다의 끝과 하늘의 시작이 어우러진 그 경계에, 해가 천천히 몸을 누이고 있었습니다.
간조의 시간이라 바닷물은 멀리까지 빠져 있었습니다. 갯벌이 드러나고, 물비린내 대신 시원한 흙냄새가 은근히 감돌았습니다. 바다는 한 걸음 물러서 있었지만, 그 빈 공간이 오히려 넓고 고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붉은 빛이 길게 퍼지고, 금빛 잔물결이 남은 물 위에서 마지막 햇살을 반짝입니다.
부모님과 함께였습니다. 아버지는 멀어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 계셨고, 어머니는 내 옆에서 바람을 맞고 계셨습니다. 백사장을 스치는 바람은 생각보다 시원했고, 발끝에 닿는 모래는 따뜻하면서도 촉촉했습니다. 뜨거운 한낮을 지나와 만난 이 바람은, 오히려 하루의 끝자락을 밝혀주는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태양은 지구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하루를 밝히기 위해 잠시 자리를 옮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석양은 ‘끝’이 아니라 ‘이어짐’의 빛이겠지요. 부모님과 함께 바라본 그 석양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노을을 함께 바라보는 그 순간, 우리는 같은 풍경 속에서 같은 속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잔잔한 갯벌 위로 붉은 노을이 천천히 내려앉고, 모래 위엔 길게 그림자가 늘어졌습니다. 바다는 말을 아끼고 있었고, 우리는 그 침묵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저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저녁. 별다른 대화도 없이, 바람과 빛, 그리고 곁에 있는 온기만으로도 마음이 가득해졌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고요히 따뜻해집니다. 여름휴가, 그건 어쩌면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시 멈추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자리에 바다가 있고, 노을이 있고, 부모님이 계셨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