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법철학

권리의 반대가 의무라고?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by 이동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


비슷한 말이지만 '권한'의 자리에 권리, 권능, 권익 등 어떤 말을 넣어도 어색하다. 권력은 나머지 단어보다 덜 어색하지만 아쉽게도 권력은 법적 용어라기보다 정치적 언어에 가깝다. 따라서 법적이자 정치적인 위의 발언에 정치적 색채를 짙게 하기 위하여 권력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그런 언어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권력, 권리, 권한, 권익 등의 단어는 각 어떤 뜻이기에 상호 교환적 사용이 불가능한 것인지 궁금해야 한다. 한국어는 우리의 모국어이기 때문에 용례에 맞지 않는 단어의 사용이 '어색하다'라는 느낌을 주지만 그것은 정확한 뜻을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권리의 반대는 의무가 아니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통념과 다르게 권리의 반대는 의무가 아니다. 심지어 법학을 전공한 사람 중에서도 권리의 반대가 의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말을 어떤 뜻에서 한 것인지 대략 이해는 한다. 왜 심지어 법률가조차 그런 말을 상투적으로 쓰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권리의 뜻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우선 권리는 광의의 권리와 협의의 권리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권리'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대부분 '넓은 의미의 권리'를 뜻한다. 권리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는 없다. 권리를 법에서 인정되는 의사라고 보는 학자도 있고, 법에 의해 보호되는 이익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으며, 법이 보장하는이라고 보는 학자도 존재한다. 권리의 리(利) 자는 이익의 측면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대부분의 사전(어학사전이나 오픈백과 등)에서 힘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 번째 학설이 일반적인 견해라는 근거도 된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권리는 '법적으로 보호되는 이익 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부여된 힘' 정도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권리는 우리의 일상적 용법과 다르게 법률에 한해서는 '권리'로 잘 불리지 못한다. 기본권, 자유권, 사회권 등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는 권리이지만 기본권리라고 불리지 않는다. 좁은 의미의 권리는 타인에게 특정한 작위(또는 부작위)를 청구할 수 있는 법적인 힘, 즉 청구권이다. 이런 청구권은 대부분 의무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하는 의무는 권리와 내용은 같으나 방향은 반대이기 때문에 '권리의 반대는 의무'라는 통념이 생긴 것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A는 시계를 만 원에 팔고 싶어 하고 B는 A의 시계를 만 원에 사고 싶어 한다면, A는 B에게 만 원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B는 A에게 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반대방향만 반대가 아니다.


위의 사례를 그림으로 설명하면 화살표의 방향이 반대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 그린 그림에서 화살표의 방향이 반대'라고 해서 그것이 반대 개념이라는 말은 아니다. 조금 더 거칠게 비유하자면 눈 오는 날 내가 건물 앞 도로의 눈을 치우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나는 내 건물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치운다. 그리고 내 건물의 오른쪽에 있는 다른 건물의 주인은 그 건물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눈을 치운다. 그러면 나는 눈을 치울수록 상대방을 향해 다가가고, 반대로 상대방은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눈을 치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눈을 치우는 행위'의 반대가 '옆집 아저씨가 눈을 치우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저 사람은 나랑 반대 방향으로 눈을 치우고 있네?'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권리는 대부분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 '권리가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라는 명제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권리가 있다는 현상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용은 같으나 방향이 반대인 의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A가 B에게 만 원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은, B가 A에게 만 원을 줄 의무가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관련성에 있어서는 주체가 변경된다. 청구권자의 권리가 피청구권자의 의무라는 뜻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동일한 주체를 기준으로 권리와 대가적 관계에 있는 의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A가 B에게 만 원을 청구할 권리가 발생한 이유는 A가 B에게 시계를 줄 의무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관련성은 계약에서 대부분 발생하지만 항상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권리의 반대는 무권리, 의무의 반대는 자유.


자유는 소극적 허용을 말한다. 물론 자유 또한 생각보다 간단한 개념이 아니어서 자유라는 한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이때까지 쓴 글보다 훨씬 더 많은 논의를 해도 부족하다. 아주 복잡한 개념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유는 기본적으로 간섭과 속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서양에서 자유는 '압도적 지위를 차지한 종교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시작해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라는 속박을 끊는 것(1688 명예혁명부터 시작된 일련의 혁명)'으로 완성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자유는 '압도적 지위의 종교로부터 또는 절대권력을 가진 국가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를 소극적 허용이라 한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자유는 의무가 발생하는 곳에서 끝난다. 해변을 예로 들자면 산부터 시작해 모래사장까지가 자유이고, 땅이 끝나고 물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가 의무이다. 즉, 물로 잠기지 않은 곳이 육지이듯 의무가 부여되지 않은 영역이 자유이다. 국방의 의무를 즐겁게 이행할 수는 있으나 군인을 자유로운 신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B는 누구로부터도 돈 달라는 말을 듣지 않을 자유가 있었으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A에게 만 원을 줄 의무가 생긴다. 그리고 그 의무는 자유와 양립 불가능하다. 논리학에서는 이렇게 양립 불가능한 두 개념이 반대관계에 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권리의 반대는 무권리이다. 우리의 법률관계는 무권리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무권리는 태평양의 넓디넓은 바다에 비유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계약, 손해의 발생 등)이 발생하면 태평양의 작은 섬처럼 권리가 불쑥 솟아난다. A는 지나가는 누구에게도 만 원을 달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A는 만인에 대하여 '만 원을 청구할' 권리가 없는 상태(무권리)다. 그러다가 시계를 팔겠다는 계약을 체결하면 계약의 상대방에 한하여 '만 원을 청구'할 수 있다.





권리는 의무와 상관, 자유는 무권리와 상관.


행위자의 권리가 상대방의 의무와 상관되어 있듯이, 행위자의 자유는 상대방의 무권리와 상관되어 있다. 내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필 자유가 있다면 상대방은 나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해변의 바닷물이 조금 더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자유가 제한된다면, 즉 자유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바뀐다면 자유의 영역이 줄어든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와 같이) 나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필 자유가 제한된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에게 상대방은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충분히 어렵지만 조금만 더 어려운 이야기를 해보자면...


동일한 주체에 한해서 자유가 끝나는 곳에 의무가 있다, 즉 동일한 주체, 동일한 사안에 한해 자유와 의무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말한 것과 같다. 하지만 나의 자유가 곧바로 상대방의 의무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거를 나간다고 가정하자. 나는 자유롭게 선거 운동을 할 자유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선거 운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선거 운동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을 의무'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상대방이 나를 향한 낙선 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자유와 반대되는 상대방의 자유가 중첩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 이 글은 수많은 예비 법조인들을 좌절로 몰아넣었던 Wesley Newcomb Hohfeld 이론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이 글을 읽고 좌절감을 느끼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쓴 나조차 호펠드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 개념을 정리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쓴 글이니 부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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