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무성이라는 곳에 갔을 때의 일이다. 무성은 당시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가 읍장으로 있었는데, 공자가 방문했을 때 백성들이 현악기 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공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자유에게 "어찌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가?(할계언용우도)"라고 말하였다. 그에 대하여 자유는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라고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라고 말하였고, 공자는 자신이 한 말이 농담이었다면서 제자를 칭찬한다. 공자가 실수를 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는 대목에서 자유처럼 큰 일을 할 사람이 작은 일(무성을 다스리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특해서 한 말이었다는 해석이 조금 더 와닿는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려하십니까?
공자가 한 같은 말은 완전히 반대로 쓰이기도 하는데, 삼국지연의에서의 쓰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소설 속 제1대 빌런(villain)으로 동탁이라는 인물을 설정했는데, 주인공 유비를 포함한 지방의 제후들은 '반anti동탁 연합'을 결성하여 그를 토벌하려 한다. 동탁의 오른팔로 삼국지연의 세계관 최강자 '여포(방구석 여포의 그 여포다)'가 연합군을 막으려고 할 때, 그의 왼팔 격인 화웅이 나서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려하십니까?" 연합군을 막는 것은 작은 일이니 소 잡는 칼인 여포가 아니라 닭 잡는 칼인 자신이 나가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 대사는 아마 삼국지연의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일 것이다. 화웅은 저 말 한마디로 '닭칼좌('-좌'는 본좌에서 파생된 말로 남을 높이거나 반대로 비꼴 때 주로 쓰는 신조어 중 하나이다)'라는 불멸의 호칭을 얻게 된다. 그리고 화웅의 저 말은 공자의 말과는 뜻이 다른 것 같다.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하자' 내지는 '작은 것에 과몰입하지 말자'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 말이 요즘 세대에 더 큰 울림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요즘으로 보자면 고시 낭인이었던 나관중이 공자의 저 말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 낭인으로 남았는지 아니면 자신만의 천재적인 사르캐즘이었는지는 자신만 알테지만.
참새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아서는 안 된다.
나관중의 저런 해석이 동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도 행정권의 발동에 대한 유명한 법 격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참새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아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국가의 행정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발동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작은 목표를 이루자고 시민에게 큰 의무와 제재를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격언이 행정권의 발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어떤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회가 법을 만든다면 시민에게 최소의 피해가 가도록, 그리고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최소한의 손해만 끼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민법 제666조
부동산 공사의 수급인은 전조의 보수에 관한 채권을 담보하기 위하여 그 부동산을 목적으로 한 저당권의 설정을 청구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일을 해달라'라고 요구받은 사람을 우리는 '수급인'이라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일을 해달라고 하면서 '노동력 제공' 그 자체가 중요한 계약은 고용계약이라고 하고, 완성된 결과물이 중요한 계약은 도급계약이라고 한다. 건물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완성품인 건물이 중요하니 도급계약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리고 도급계약에서 일을 주는 사람을 도급인이라고 하고 일을 받는 사람을 수급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에서 본 것처럼 부동산 공사의 수급인은 보수를 받기 위해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할 수 있다. 닭칼과 새총을 마련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법은 부동산 공사의 보수를 받기 위해 소 잡는 칼과 대포(유치권)도 마련해놓았다. 닭칼과 대포가 내 앞에 있다면 당연히 대포를 쏘지 않겠나. 남의 머리야 터지든 말든 내 돈 받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니, 법을 탓할 일이지 대포를 쏜 사람을 탓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