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주의적 사고가 발생한 이래 현재까지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가치 기준으로서의 신을 부정해왔다. 그 과정은 한꺼번에 혁명처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야에 따라 다른 시작점과 다른 속도로 진행했지만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범죄와 광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또한 합리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에 순응하며 바뀌어왔다. 광인은 선지자나 적어도 무해한 자에서, 신에 거역하는 자 내지는 마녀의 지위를 거쳐 고칠 수 있는 질병을 가진 자의 지위로 전환되었다. 범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고에서 신을 끊어내고 나니 영혼을 둘 곳 없는 인간들은 모든 선택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신의 의지Divine Will가 자유 의지Free Will가 되면서 인간은 다른 종류의 야만을 획득했다. 모든 결과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니 성공도 자신의 덕이고, 실패도 자신의 탓이라는 야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고전주의 범죄학: 범죄도 자신의 선택이다.
범죄에 관한 관점도 광인의 그것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변화했다. 그리고 합리주의가 범죄학에 처음 선사한 선물은 자유 의지가 범죄를 결정한다는 단순한 생각이다. 어떤 실증적인 연구도 없이, 오직 합리적인 인간을 상정하여 그들이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전제에서 고전주의 범죄학이 출발한다.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나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은 엄밀한 의미에서 범죄학자가 아니다. 그들은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 바탕을 둔 근대적 형벌제도, 형사사법절차의 창안자이다. 자유의지가 선택의 모든 것이라면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답은 그가 범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형법과 형사절차의 근대화, 처벌의 비신체화에 더 힘을 쏟았다.
범죄의 피해에서 범죄의 이익으로
전근대적 형벌은 응보형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쉽게 설명될 수 있는 응보형주의는 형벌을 사적인 보복을 국가에 일임한 것으로 보았다. 개인적인 복수가 난무하는 짐승의 세상에서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여 피해자를 대신해서 복수를 하는 형태로 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형벌은 범죄 피해에 상응하거나 그것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정해졌다. 범죄에 의한 피해가 더 크다면 형벌도 더 잔혹해야 했다. 신의 지위를 대신하는 왕, 그를 살해하려는 시도는 실로 엄청난 범죄 피해를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왕시해범 King slayer은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 고문을 당하다가 힘들고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근대적 사법절차에서 형벌은 범죄로 인해 침해당한 공리utility를 바로잡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하고, 그러한 범죄를 예방하는 것을 두 번째 목표로 삼았다. 수형자에게 역(役)을 가하는 것은 첫 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들은 범죄의 예방(범죄를 저지르는 것 자체가 사회 전체로 보아 효용이 감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이 형벌의 주된 기능이라고 보았는데,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범죄의 이익을 약간 상회하는 형벌을 줌으로써 범죄라는 선택을 저지하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자를 범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좌절시키는 것이 형벌의 기능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라고 보았다.
처벌의 엄격성, 확실성, 신속성
고전주의 범죄학은 공리주의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범죄자가 범죄를 선택하는 이유는 범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범죄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처벌을 비교하여 이익이 조금 더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벌은 범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상회하여야 한다. 범죄 이익보다 낮은 형량은 범죄를 막지 못하고, 범죄 이익보다 지나치게 높은 형량은 수형자의 공리를 지나치게 해한다. 이것을 처벌의 엄격성이라고 한다. 수형자의 공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형량이 높을수록 범죄 시도는 좌절된다.
그리고 처벌의 엄격성은 처벌의 확실성에 대한 종속변수이다. 처벌의 확실성은 범죄자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가이다. 그것은 이미 주어진 것으로 처벌의 엄격함의 정도는 확실성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절도 범죄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징역 3년에 상응한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해당 국가의 절도 범죄 검거율은 50%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형량은 징역 6년 이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절도범은 잡히지 않을 때의 불이익(징역을 살지 않음)과 잡혔을 때의 불이익(6년)을 같이 고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처벌의 신속성은 범죄행위와 처벌 사이의 기간이다. 인간은 망각과 기억 왜곡을 통해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처벌도 범죄행위와 멀어지면 수형자는 처벌을 납득하지 못한다. 돈을 빌린 사람이 처음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하다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마치 돈을 빌려준 사람처럼 적반하장 격으로 성질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고전주의 범죄학의 오류(1)
고전주의 범죄학의 오류는 공리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대별할 수 있다.
공리주의의 오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종류의 쾌고(快苦)를 하나의 단위로 바꿀 수 없다. 쾌락과 고통을 하나의 단위로 환원하려는 노력은 많이 존재했다. 특히 요즘과 같은 배금주의 시대에는 화폐가 강력한 레버리지를 가지기 때문에 쾌락과 특히 고통을 환가할 수 있다는 유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실험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당신은 발가락 하나를 자르는 대가로 얼마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15cm짜리 지렁이를 하나 삼키는 것을 대가로 얼마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존재했지만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가라는 의문은 아직 남아있다.
둘째, 모든 사람의 쾌고는 다른 수치를 나타낼 수 있다. 위의 실험을 예로 들자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얼마를 주더라도 발가락을 자를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쾌락과 고통을 하나의 수평선 위에 놓는 것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그럴 수 없겠지만) 그것도 불완전한 지표의 일부일 뿐이다. 예를 들어 범죄를 쉽게 저지르는 자는 징역형을 받는 것을 그다지 겁내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평생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자는 집행유예라도 치욕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고전주의 범죄학의 오류(2)
고전주의 범죄학이 공리주의와 상관없이 가지는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인간이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공리주의가 가지는 모든 한계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합리적일 수는 없다. 범죄의 원인을 설명하고 그것을 예방하려는 이론이 범죄자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다. 그리고 범죄자는 비범죄자가 보기에 특별히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비범죄자의 도덕적 능력을 무시한 이론이다. 대부분의 비범죄자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비범죄자들은 규칙과 법률에 순응하는 것을 충분히 사회화하고 그것을 내면화하였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약한 형벌이라도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절대적 억제도 설명과 실증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