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의 가르침
퇴계 이황 선생이 평생 강조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선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릴 만큼 복잡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타인을 위한 배려가 손해로 돌아오기도 하고, 정의로운 선택이 외면받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지금, 선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퇴계의 가르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람들에게 '퇴계 이황'을 떠올려봐라-고 한다면 아마 천원짜리 지폐를 떠올리거나 율곡 이이랑 헷갈려 오천원권 지폐를 떠올리기 일쑤다. 지폐에 실릴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퇴계 이황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단순히 이론만을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모든 순간마다 철학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특히 ‘한유(寒儒)’의 자세를 중시했는데, 이는 선비의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삶을 기꺼이 감내하며 살아가는 겸손한 태도를 뜻한다. 한마디로,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삶의 방식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아들 이준에게 “가난은 선비에게 당연한 일이다”라며, 가난한 삶조차도 수양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의 제자 이덕홍도 퇴계가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여유롭게 생활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퇴계가 중시한 ‘한유의 삶’은 단순히 외적인 가난을 참고 견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퇴계가 강조한 ‘경(敬)’의 사상이다. ‘경’이란 단순히 예절을 지키는 것을 넘어,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삼가는 ‘내면의 태도’이며,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수양을 뜻한다. 퇴계는 이 ‘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보고, 가족과 제자들에게도 이를 실천하며 가르쳤다. 특히 둘째 부인 권 씨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이 사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권 씨가 흰 도포를 붉은 실로 꿰맸을 때조차 퇴계는 나무라지 않았고, 그녀의 상을 치를 때는 두 아들에게 적모복(嫡母服)을 입히는 등 깊은 존중과 배려를 실천했다.
이러한 퇴계의 태도는 당시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와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이었으며, 19세기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 『여성의 종속』에서 주장한 여성 평등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밀은 여성의 종속이 본성이 아닌 관습과 제도의 산물이라며,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율적이고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진정한 인간관계는 권위가 아닌 상호 존중과 평등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퇴계는 밀처럼 사회 제도를 노골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일상 속에서 ‘경’이라는 태도를 통해 조용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결국 퇴계의 삶을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한유’의 자세는 마음속 ‘경’의 실천을 통해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삶을 견딘다 하더라도, 그 안에 올곧은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체념일 뿐이다. 그러나 퇴계는 ‘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그 결과로 ‘한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한유’는 ‘경’을 통해 비로소 살아 있는 철학이 되었고, ‘경’은 ‘한유’를 통해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퇴계 이황의 사상을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한유(寒儒)의 삶’을 너무 쉽게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과와 화려한 이력,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이 보여준 삶은 그러한 외적 조건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고 도를 실천하는 데 중심을 둔 삶이었다. 겉으로는 검소하고 소박했지만, 그 내면은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깊었다. 어쩌면 진정한 ‘선’은 바로 이렇게 자기 성찰과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퇴계 이황은 시대의 유교적 전통 속에서 살았지만, 그의 삶은 단지 그 틀 안에 머물지 않았다. 선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려면, 무엇보다 ‘선’이 거창한 이상이나 선언이 아니라 작은 일상 속에서 실천되는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퇴계 이황은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가난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진실하게 자신을 다스리며 살아갔다. 그가 강조한 ‘경(敬)’의 정신은, 결국 남을 지배하지 않고 존중하며, 나부터 바르게 살아가려는 자세였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성현이 될 수는 없지만, 퇴계처럼 자기 삶을 돌아보고,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려는 태도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많은 세상은, 누군가의 위대한 한 걸음보다 모두의 조용한 한 걸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한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물음과 실천이다. 퇴계 이황처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일 때, 비로소 우리는 선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