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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최기자 Apr 18. 2024

[에세이] <진실과 거짓말 이야기>

진실과 거짓 사이 경계란 존재할까.


진실은 거짓보다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적어도 더 인간적일까


우리는 왜 알지도 못하는 진실에
그토록 집착할까.


신문사에 다닐 때 “언론인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공정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표현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보다 모순된 표현은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이란 말인가. 총선에 이기기 위해 갖은 ‘팩트’들을 자기 유리한 대로만 모아서 간신히 ‘거짓말은 아닌’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그게 진실인가.

무엇보다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앞뒤가 달랐다. 어제는 이 사람을 옹호했다가 오늘은 완전히 정반대의 근거로 같은 사람을 매장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진실 추구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진실이란, 목적을 갖고 하는 거짓말을 포장하기 위한 구호 같았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가 교회 친구 같은 두 사람이 얘기하는 내용을 들었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영생과 영벌 같은 말을 가득 늘어놓는 입이 왠지 악마처럼 보였다. 하나님의 선한 양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어째 입에는 저렇게 폭력과 혐오, 분열을 조장하는 말만 잔뜩 할까. 진실이나 정의를 입에 담고 사는 자들은 전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얼굴에는 삶에 대한 경멸이 가득 써있는 것 같다.


이날부터 난 지나치게 예쁘게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아니, 원래부터 믿지 않고  경계했지만, 이때부턴 확신을 가지고 피해다녔다.

한때 종교에 심취한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술작품이나 상징에 심취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니체가 말했듯이 영리한 욕망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이성이란 망토를 쓰고, 뒤틀린 욕구는 선이나 진리라는 갑옷으로 자신을 감추려 한다. 그때 내가 썼던 글들을 보면 도저히 쳐다보고 있기가 힘들 만큼 괴이한 감정과 자만심, 현학적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0년간의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 뒤에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을 남겼다. 젊은시절 글깨나 쓴다고 오만방자했던 그가 공산당 정권의 미움을 사 죽음과 같은 유배생활을 한 다음 한 말이다. 어쩌면 거짓말이나 망상을 진실이라고 포장하는 못된 본성은, 인류가 문학과 예술을 발전시키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을 뛰어넘는 원동력이 돼 왔는지도 모른다.

진실에 집착하기보다
차라리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거짓말을 소중히 여기면 어떨까.

진리와 정의를 외치며 남을 옥죄는 잣대와 편견을 퍼뜨리기보다,

자신을 좀더 잘 챙기고 남을 좀더 잘 이해하는 데 집중해 본다면.



존경하는 한 작가가 <내겐 너무 예쁜 손님들>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 스쳐지나간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우리가 믿으면 거짓말도 진실이 된다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말이 경솔함이 되지 않기를,
진실과 거짓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진실과 거짓말이 약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내가 너무 가볍지 않기를,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기를,

그러나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무거울 수도 있기를,

나는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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